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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계형 개발자 Oct 08. 2023

철학은 개발하는데 도움이 된다

머릿속에 지진을 일으키고 사고를 전환시키기

과거 브런치에 ‘인문학이 개발하는데 도움이 될까’라는 제목으로 글을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교양도서까지 인용하며 나름 자신감이 넘치게 작성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인문학과 개발 사이의 연결고리를 피상적으로만 접근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실무 경험도 짧고 내공도 부족한 상태였다 보니 논리와 깊이의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았던 글이었습니다.


작성시점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저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저는 개발자에게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문학 중에서도 철학은 개발자로서 한 단계 레벨업을 하고자 할 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이 개발에 도움이 된다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주장입니다. 니체, 쇼펜하우어, 플라톤처럼 굵직한 철학 이론을 남긴 사람들은 컴퓨터는 물론 천공 카드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철학자들이 남긴 이론과 컴퓨터 과학 사이에는 큰 관계도 없습니다. 철학이 도대체 개발에 과연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철학은 머릿속에 지진을 일으킵니다.


저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를 우리는 머릿속에 빌딩을 세우는 작업으로 비유합니다. 네트워크, 알고리즘처럼 컴퓨터 학문 지식을 습득하면 우리 머릿속에 개발 빌딩이 세워집니다. 마찬가지로 부동산이나 주식을 공부하면 경제라는 빌딩이 세워지죠. 학문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SNS, 뉴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접하는 정보도 머릿속에서 빌딩이 됩니다. 정치, 사회와 관련된 뉴스를 접하면서 우리는 각자만의 정치, 사회, 문화 빌딩을 세우죠.


그러나 철학을 공부하는 행위는 빌딩을 세우는 게 아니라 지진을 일으키는 것과 비슷합니다. 기존에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은 이미 형성된 지반 위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행위였다면 철학은 지반을 흔들며 빌딩에 긴장감을 줍니다. 우리 사고에 균열을 내고 기존의 사고방식에 의심을 갖도록 만드는 과정이죠.



‘신은 죽었다’는 말은 철학을 공부하지 않은 분들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문장은 표면적으로는 당시 근대 과학이 발전하며 신의 존재가 부정당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장의 주인공인 니체는 단순히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종교의 권위에 대해서 도전한 인물입니다. 과격한 표현이긴 하지만 니체는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최후의 심판 같은 것은 종교에 입각한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을 채우고 대중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길들이기 위한 장치라고 말했습니다. 다소 불편한 표현이지만 종교를 갖고 계신 분들 뿐만 아니라 저처럼 무교인 사람도 쉽게 생각하기 힘든 신선한 사고방식입니다.


니체는 종교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도덕윤리에도 도전한 인물입니다. 우리 모두 선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들은 자산이 선량하다고 믿지만, 실은 앞발이 마비된 것뿐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비루한 처지를 이타주의, 선으로 포장하고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을 악인으로 규정해 버렸다고 하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지만 ‘부자는 나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선량하다’라며 무의식적으로 부자들의 성취를 깎아버리는 우리의 태도를 꿰뚫고 있는 발언이죠.


옳고 그름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나름입니다.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권위를 거부하는 사고입니다. 니체의 철학은 무비판적으로 머릿속에 쌓아 올렸던 지식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어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내가 배웠던 투자 이론은 객관적 근거가 충분한 것일까요? 혹시 전문가라는 휘광 때문에, 대학교수라는 타이틀 때문에 무지성으로 따라가고 있던 것 아닌가요? 나의 정치 성향은 충분한 증거에 기반한 것들일까요? 다소 과격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끌려 가던 게 아닐까요? 철학자의 주장은 우리가 쌓아 올린 빌딩에 균열을 냅니다. 덕분에 우리는 버려야 할 지식은 버리고 수정이 필요한 지식은 가다듬을 수 있게 됩니다.


애자일은 좋은 제도일까요?


개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적인 의사 결정으로 내려지는 작업 같지만 개발도 권위에 입각해서 결정을 내릴 때가 많습니다. 특히 ‘애자일’ 같은 특정한 방법론이 유행이 되는 경우, 방법론의 목적보다는 방법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권위에 이끌려 결정하는 것을 많이 봤었습니다. 스프린트, 스크럼 같은 멋진 단어와 유명한 회사들이 애자일을 이용해 성공적인 프로덕트를 만들었다는 사례를 접하면 애자일은 엉킨 실타래를 완벽하게 풀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완벽한 설루션이 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 애자일은 유연성을 갖출 때 빛을 발합니다. 하지만 권위에 추종해서 모든 룰을 지키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업무 비효율이 발생합니다. 매일 아침마다 모든 팀원들이 모여 자기 할 일을 공유하는 스크럼은 어쩌면 불필요한 제도 일수도 있습니다. 팀원이 10명인 경우 1분씩 자기 이야기만 해도 10분이 소요됩니다. 거기에 일부 팀원과 핑퐁이 오고 가면 한 명이 5분을 잡아먹기도 하죠. 나와 무관한 업무인 경우 괜히 소중한 오전 시간만 잡아먹는 제도가 됩니다. 거기에 스탠딩으로 진행하면 괜히 내 다리만 고생시키기도 하고요.


스프린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하는 해야 하는 스프린트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만드는 장치가 되기도 했습니다. 급하지 않은 기능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주에 할 일이 없다’는 이유로 억지로 넣는 과정이 왕왕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일을 두 번 하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죠. 겉으로는 팬시(fancy) 해 보이지만 내부는 포장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던 것입니다.


철학은 사고를 전환시킬 수 있는 재료입니다.


물론 꼭 철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권위를 거부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아마 대다수가 학교나 회사, 동아리 같은 단체 생활을 하면서 권위에 도전하고 의심해 본 경험을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사고는 특별한 경험과 숙고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매번 돋보기를 들고 관찰해야 발견할 수 생각이죠.


철학은 숙고의 시간을 줄여줍니다. 철학자들이 저를 대신해서 돋보기를 들고 제 삶에 질문 거리를 던져줍니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들에 철학자들의 이론을 통해 다시 바라보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것이야 말로 사고의 전환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설, 시, 영화뿐만 아니라 운동과 다른 학문을 공부하면서도 사고의 전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연구한 철학이야말로 여러 가지 사고를 하기에는 가장 좋은 재료였던 것 같습니다. 시간대비 효율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당장 읽는다고 곧바로 성과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철학을 차곡차곡 머릿속에 쌓아가다 보면 익숙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 단계 개발자로서 레벨업을 하고 싶다면 철학 도서를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언젠가 난제를 풀기 위한 좋은 재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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