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벽, 뒷산을 산책하는 시골 사는 웰피츠 일기
사장님 감시 중이잖아.
울타리 만들어서 정원에서 맘껏 뛰어놀게 해 주겠다고 약속한 지 이 년이 넘었어.
차일피일하다가 드디어 울타리 만든다더니 몇 달 만에 비가 오네.
그래서 또 이주를 넘기고
저녁 산책 안 하면 밥맛이 떨어져 버려서 나는 밥도 안 먹지만 콩엄마가 저녁 산책이 딱 싫다잖아.
나도 효심이 있다고.
빨리 울타리가 만들어져서 마당에서 뛰어놀고 싶어 하는 콩엄마의 소원을 풀어주려고 사장님이 열심히 일하나 날마다 감시 중이야.
그런데 무려 이틀을 뭔 들마루를 만든다고 종일 열심히 하시더라고,
사장님 엄마가 잠깐 다니던 경로당에 가져다 줄 거래.
그걸 왜 여기서 만드냐고?
효자인 거 티 내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또 그걸 싣고 가더니 빨간 지붕이 있는 테이블을 가져다 놓는 거야.
먼저 경로당에 만들어 주었던 건데 할머니들이 편한 들마루 만들어 달래서 바꿔온 거라네.
효자 맞네.
빨간 테이블은 앞산 바라보기 좋아하는 나의 시야를 가려서 기부니가 나빠질라고. 그래.
사장님이 며칠 일하나 싶으면 또 비가 오는 거야.
반나절 만에 울타리 작업 종료.
그끄제 하루만 빡시게 하더라고….
하지만 사실 자세히 보면 식혜도 마시고, 빵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러 가고 엄청나게 새는 시간이 많다는 거 알고 있어?
어제도 오전에 일 열심히 하시나 했더니 또 비가 오네.
이런 젠장~~
언제 울타리가 다 되냐고?
언제 맘대로 뛰어놀 수 있냐고?
그래서 한시도 감시의 눈길을 뗄 수가 없는 거야.
# 에필로그
몸과 마음이 더는 내려갈 수 없는 바닥이라고 느꼈을 때, 34년을 일하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시골로 내려왔다.
집을 지으려고 한 다리 건너 건축업자를 소개받으며 본 유튜브 영상들에 겁이 났다.
건축업을 하는 사람들은 온통 사기꾼이고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았다.
<ebs 건축탐구- 집>>은 모두 찾아 시청했고 <건축학 개론>을 다시 봤고, <투스카니의 태양>은 반복해서 봤다.
주인공인 프란시스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지만 남편의 외도로 집까지 빼앗기고 이혼을 하며 절망적인 상태로 친구가 선물한 티켓으로 잠시 이탈리아 투스카니로 여행을 떠난다.
양 떼들이 버스를 막아 잠시 정차했을 때, 버스에서 내리게 되고 금방 지나치며 보았던 브레마솔레의 집을 찾아가 홀린 듯 집을 사고 집수리를 시작한다.
이탈리아 시골의 목가적인 풍경 속에 집을 수리하며 프란시스가 맞이하는 사건과 시간들이 마치 내 얘기 같았다.
브레마솔레(Bramasole)는 ‘태양을 그리워하다.’는 뜻이다.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경험과 인연을 통해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한 남자와 두 번째 황혼이혼 중이었다.
수십 년, 감정과 돈을 갈취당하며 살아온 나는 가정폭력의 ‘생존자’ 다.
무엇보다 그 시행착오를 두 번이나 되풀이했다는 어리석음에 대한 자괴감과 아직 끝나지 않은 심리적 공포로 극심한 우울증이 왔고 병원에서는 당장 입원을 권고했다.
나는 괜찮은 척 꾸미는 것에 생의 모든 에너지를 쓰며 ‘가면 우울증’으로 살아왔다.
내가 보는 세상은 그냥 회색이었다.
그리고
프란시스처럼 감옥과 같았던 그 공간을 떠났고, 약을 먹으며 집을 짓기 시작했다.
살아남기 위해 평생 심리를 공부했고 독서치료, 미술치료, 영화치료, 웃음치료, 울음치료 등등 서른 개가 넘는 상담 자격증을 따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하루하루 버텼다.
대학원에서 상담을 전공하고 석사학위까지 취득했지만 내 마음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 둑을 무너뜨린 것이 코로나였다.
모두가 섬이 되었을 때, 무인도에 둘만 남겨져 날마다 지옥을 경험하며 더는 버틸 수 없었고 정신과 몸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렸다.
콩 가을이와 매일 산책하면서도 무표정했고, 언제 어디서 그 사람이 나타나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심에 짓눌려 있었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며 파헤쳐진 땅에 집을 지어야 해서 억지로라도 움직여야 해서 버틸 수 있었다.
동물 매개 치료도 공부했던 나는 땅콩이 와 가을이가 주는 위로가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랫동안 무표정한 얼굴로 콩 가을이를 바라보곤 했다.
풍성한 꼬리를 흔들며 위로하는 가을이를 보면 미안해서 억지로 웃고, 쓰다듬으면서도 굳어진 얼굴과 마음이 풀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4년이 지났다.
콩, 가을이와 살며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위로받았는지 어디까지 오픈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
결국 내 마음이 회복된 만큼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아직도 내면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느낌이지만 말하고 나면 어쩌면 더 빨리 나을 수 있을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세상은 온통 악으로 차 있어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내 마음을 사장님은 자기 집을 짓듯 정성을 다해 집을 지으며 조금씩 녹여 주었다.
사장님은 서울에서 크게 하던 사업이 심한 부침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서로의 버팀목이 되는 따뜻한 가족이 있었고, 반듯하게 잘 키운 아들들을 지독히 사랑하며 잠시도 쉬지 않는 부지런함에 겸손까지 갖춘 한결같은 태도에 사람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천창에 대한 로망을 말했더니 거실 전체를 시원한 통창으로 만들어 하루 종일 앞산을 바라보고 ‘구름 멍’을 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작은 중정에 대한 요구는 훨씬 더 나은 공간으로 창조해 주셨다.
딱 나에게 맞는 집이 완성되고 외등, 정원등, 실내등을 서울에 가서 직접 사 와서, 일일이 정성을 다해 달아 주셨다.
집 완성의 화룡점정이 등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콩, 가을이가 마당에서 맘껏 뛰어놀게 하고 싶다는 소망은 좋은 잔디를 사기 위해 진주까지 달려가 금잔디를 구해다 깔아 주셨다.
건축 공정과 원리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집의 기초와 뼈대와 바람을 막을 벽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고 들으며 집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30도가 넘는 뜨거운 여름날에도 인부들과 구슬땀을 흘리며 함께 일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나는 집은 곧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이라는 시간과 공간에 사람의 역사가 담기는 것이다.
정기용 건축가는 건축이 ‘시간’을 설계하는 직업이라고 했다.
창문이 삶의 프레임이라고 했는데 사장님의 건축 프레임은 시원한 개방이었다.
집은 다 지어졌지만 사장님이 바빠지시고 울타리 작업이 미뤄지면서 콩, 가을이는 마당에서 묶여서 지냈다.
활동성이 넘치는 가을이는 화가 나서 잔디밭을 다 파내기도 했다.
1년이 지나서야 울타리 작업을 하게 되었고 그전에 콩, 가을이의 집이 될 정원 안의 쪽문이 먼저 완성되었다. 가을이는 쪽문 울타리에 턱을 괴고 매일 울타리 작업을 하는 사장님을 감시하는 듯했다.
늘 불만이 많은 얼굴이었다.
'사장님 새참시간이 언제 일지? 그때 간식을 얼마나 뺏어먹을지?' 생각 중이라는 것은 알지만 마치 울타리 빨리 만들어지길 바랐던 내 마음의 투사가 가을이가 감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효자인 사장님이 구십 넘은 어머니를 위해 들마루를 먼저 만들고 있는 모습도 불만인 듯한 얼굴이었다.
가을이 일기를 사장님께 보여드렸더니 양심에 찔려 혼났다고 여러 번 얘기하셨다.
지금도 사장님께 건축의뢰를 해놓고 7년, 10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집을 짓는 일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언젠가 집을 지으며 느꼈던 행복에 대한 글도 써보려 한다.
그래서 집은 사람이다.
지금 여기에서 ‘투스카나의 태양’처럼 그리워하던 자유롭고 따뜻한 햇살아래 살고 있다.
내가 여기서 이걸 할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