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벽, 뒷산을 산책하는 시골 사는 웰피츠 일기
어제는 펑펑 눈이 왔다.
올해는 눈이 자주 와서 아주 기부니가 좋다.
눈이 오면 신나게 마당을 뛰어다닌다.
아지트에서 냥이들 사는 텃밭 앞까지 왔다 갔다 한다.
기부니가 좋으니 오가는 사람들한테 더 신나게 짖어준다.
눈이 오면 하늘의 별들이 이 세상에 놀러 오는 거 같다.
당근 반겨줘야지.
그래서 눈님과 함께 춤추는 거라고....
누구는
우리가 발 시려서 동동거리며 뛴다고 한다.
아니거든.
우린 특수가죽 발바닥을 가지고 있어 하나도 안 시려.
발바닥에 보일러 깔았다고 생각하면 돼.
미쿡에 가신 회장님네 집 앞길에만 눈이 녹지 않았다.
그래서 산책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눈 위에 신나게 얼굴을 비빈다.
작은 집사는 ‘그러다 얼굴 다 벗겨지겠다!’ 한다.
나를 신나게 해 줬던 눈님에게 인사하는 것이다.
이제 알겠어?
우리가 색맹이란 건 들켜버렸지만, 그래서 하얀 눈이 더 예뻐.
맨날 맨날 눈이 왔으면 좋겠다.
# 에필로그
눈이 왔다.
하루 종일 눈이 내려 쌓였다.
쪽문을 열어주자 가을이는 마당으로 신나게 달려 나갔다.
함께 달려 나가던 콩이는 짧은 다리 덕분에 눈 속에 푹 파묻히자 황급히 뒤돌아 돌아온다.
11월 기준 117년 만에 대설이라는 첫눈이 풍성하다.
온 마당을 가로지르며 뛰어다니는 가을이를 보는 것이 더 즐겁다.
고양이들은 현관 캣타워 숨숨 집에 들어앉아 하루종일 꼼짝도 안 하는데 콩이와 가을이는 몇 번이고 마당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가을아~’하고 부르면 나랑 눈을 마주치며 눈으로 들어가는 눈 때문에 눈을 움찔움찔한다.
어제 파던 화단도 다시 한번 신나게 파 제끼고 아지트로 달려가 마을길을 살피기도 한다.
계속 내리는 눈에 빨간 지붕 테이블 아래로 가서 쉬면서도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또 달려 나와 마당을 뛰어서 돈다.
신나고 즐거워 보이는 발걸음이다.
재작년 사흘도리로 눈이 내려 열몇 번의 눈이 내린 겨울, 눈이 올 때마다 신나 하는 콩이와 가을이를 보면서 ‘발이 시려서 저렇게 뛰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고 ‘개들은 눈이 오면 행복할까?’라는 생각으로 검색을 해봤다.
‘강아지는 눈이 내리면 왜 뛰어다닐까요?’라는 SBS 기사에 답이 나와 있었다.
두꺼운 지방층으로 되어있는 개 발바닥은 ‘특수 열 교환 시스템’이 있어 추운 겨울날에도 발이 시리지 않다고 한다.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따뜻한 동맥이 차가워진 정맥을 데워주면서 발바닥 온도를 적당하게 유지해 주는 따뜻한 물이 흐르는 보일러 배관처럼 혈액이 발바닥까지 내려와 체온을 유지해 주는 것이라 한다.
그러니까 가을이가 뛰는 것은 발이 시려서가 아니다.
그럼 왜 저렇게 뛰는 걸까?
개의 눈은 근녹색과 검은 회색 일부만 인식하는 색맹이라고 한다.
흑백으로만 세상을 본다니 갑자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눈이 오면 어두운 배경에 새하얀 눈송이가 불똥처럼 흩날리는 풍경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러니 ‘움직임’에 민감한 개들이 신기하고 좋아서 뛰어다닌다는 것이다.
눈은 콩가을에게 축제의 불꽃놀이인 것이다.
파리 한 마리만 날아도 잡겠다고 팔짝팔짝 뛰어다는 가을이에게 눈꽃송이는 수천 수억 마리의 파리가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눈밭 위를 뛰고 달리며 뒹구는 모습이 유난히 신나 보였던 이유가 있었다.
‘축제다~~ 눈꽃 축제다.’
신나하는 가을이를 보는 내 마음까지 흐뭇해진다.
치워도 치워도 자꾸 지워지는 길.
마당에 서 있는 큰 소나무 가지는 눈 무게에 기울어지다 결국 부러져버렸고,
지붕에서 눈 덩어리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 놀란 가을이가 뛰어 나온다.
콩이와 가을이가 신나 하니 하루 종일 눈을 치우는 일도 즐겁다.
높은 산에 둘러싸인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 겨울 내내 눈은 내려 쌓였고 봄이 되도록 녹지 않았다. 쌓인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해 소나무 가지도 뚝뚝 큰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영하 20도가 일상이던 그 추운 곳에서 우리들은 눈이 오면 하루 종일 눈밭을 뒹굴며 놀았다.
두꺼운 비닐로 산비탈에 있는 밭에서 눈썰매를 탔고 대나무를 발에 깔고 스키를 타기도 했다. 동네 아이들 모두 모여 눈싸움을 했고, 에스키모가 사는 이글루를 흉내 내 만들어서 아지트를 삼았다.
겨울 내내 꽁꽁 얼어있는 강 위에서 쉴 새 없이 스케이트를 타다 보면 내복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났다.
북극곰이나 펭귄처럼 추운 지역에 사는 동물들도 개들과 같이 ‘열 교환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생존을 위한 진화의 결과라고 한다.
어린아이들의 생존의 방법은 ‘놀이’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눈이 오면 눈밭 위에서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법륜스님이 자녀교육에 대한 강론에서 ‘폭력, 도둑질, 성폭행, 거짓말과 욕설, 술과 마약’과 같은 심각한 행동만 아니라면 자녀를 그냥 ‘믿고 기다리고 격려해 주라.’ 고 하셨는데 깊이 공감했다.
콩, 가을이처럼 신나게 뛰어노는 대한민국의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싶다.
내가 여기서 이걸 할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