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고양이가 있는 저녁 풍경

by 보리

고양이가 있는 저녁 풍경



까실한 혀로 바람을 핥아

하늘이 조금 기울어지면

균형 잃은 나무 그림자 사이로

석양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시간의 모서리를 걸어 나와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은

욕망이 사라진 고요한 평화.

알맞게 까칠한 고독이 아름답다.



가까이 있으나 닿지 않고,

멀리 있지만 떠나지 않는

노을과 어둠 사이,

그 미묘한 거리만큼

외로움을 밀고 가는 바람 한줄기.



필요 이상의 애착도,

무심한 단절도 아닌

하루의 불안을 매만지던 혀가

그렇게 저녁을 닫고 있다.


고양이 풍경.jpg




어둠의 첫 이마가

붉은 노을로 번지면

빛과 어둠을 잇는 다리처럼

따뜻한 까칠함으로

시간의 틈새에 걸터앉은 그림자.


유연하지만 단단한 척추로

오만한 꼬리를 세워

붉은 구름을 더듬고

스스로를 어루만지는 존재의

조용한 고독이 아름답다.


아직 닫히지 않은 어둠의 창을 지키며,

천천히 자기만의 세상을 순찰하고

노을과 어둠 사이,

거만한 외로움이 걸어간다.


어깨선은 부드럽게 미끄러지고,

척추는 파도처럼 휘어져

외롭지만 예민한 사랑으로

세상의 미세한 떨림을 듣는 귀.


풀잎이 꺾이는 소리,

돌담 밖으로 돌아서는 그림자.

바람이 식어가는 저녁

하늘은 마지막 붉음을 움켜쥐고 있다.


고양이 풍경20.jpg




내·여·몰(내가 여기서 이걸 할 줄 몰랐다)의

첫 번째는 바닷속을 수시로 들랑거리는 일이고,

두 번째는 고양이와 사는 일이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편견이 있었다.


고양이 풍경6.jpg


몇 년 전 자기 발로 찾아온 길냥이들에게 집사로 간택당했다.


삼시세끼 시간 맞춰 찾아와 밥을 조르고(삼식이)

박힌 돌이었던 반려견 두 마리보다 오랜 시간 마당을 차지하고

현관에서 잠들면서 맡긴 거 내놓으라며 아주 당당하다.


게으른 시간이 천천히 마당을 가로지르고

노을이 완전히 식을 때까지

고양이의 눈동자에는 밤과 낮이 함께 서성이고

슬픔을 품은 눈은 고독의 냄새를 맡고 있는 듯하다.


거만한 꼬리를 세워 구름을 어루만지며

이승과 저승의 문턱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지구의 그림자를 지켜보는

이집트 신전 입구를 지키는 듯 한

성스러운 모습.


고양이의 꼬리 끝에서

노을과 하루가 닫히는

이 잔잔하고 고독한 평화.


고양이 풍경11.jpg


노을을 잉크로

어둠의 시인이 꼭꼭 눌러쓴 저녁풍경.


고양이 풍경고양이 풍경2.jpg
고양이 풍경9.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