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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어 May 04. 2020

신사없!(2)

배달앱 : 배달 주문은 원래 통신이었다

배달음식이 처음 한국에 들어온 게 언제인지 아십니까? 네. 저도 모릅니다. (웃음) 하지만, 이것 하는 확실하게 압니다. 배달 주문은 원래 통신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잠시 인터넷이 들어오기 전, 1990년대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아, 밀레니얼 세대들은 잘 모르시겠군요. 응답하라 시리즈는 보셨을 테니 그즈음을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일요일 12시 어머니 아버지가 큰 맘먹고 자장면을 사주실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상가 전화번호가 나오는 잡지, 매달 나오는 그거 기억 나시지요? 거기서 단골 중국집 전화번호를 찾아서 간짜장 네 그릇. 기분이 좋은 날에는 탕수육 중짜 하나를 전화로 주문했지요.


그렇지요? 배달 주문은 원래 통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배달 주문은 통신이 아닌 인터넷 쇼핑이 되었고, 통신은 망이나 빌려주는 덤 파이프(dumb pipe)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들이, 우리가 정신을 놓고 있는 동안, 유통이 통신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왔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이 시각까지도 그 사실 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고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좋은 질문입니다. 유통이 통신의 영역을 침범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아쉬워하며 화살 맞은 사자처럼 굴에 숨어 상처를 핥고 있어야 할까요? 누군가를 찾아서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어디서 뭘 했는지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아니면 원래 우리 것이었던 시장을 되찾아 와야 할까요?


(잠시 침묵)


제가 하려는 말은 이겁니다. 음식 배달을 온라인 쇼핑의 영역에서 통신의 영역으로 되돌려 놓자. 배달 앱이 통신의 인프라를 활용하도록 시장을 바꾸자. 통신의 비즈니스 모델, 가치사슬, 수익모델이 적용되게 하자. 통신의...


"잠깐만. 그래서 그게 뭔데? 어쩌자는 건데?"


(잠시 침묵)


지금의 배달앱은 인터넷 쇼핑의 사업모델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쇼핑 앱에서 물건을 골라 결재하면, 사업주가 주문을 확인하고 택배로 상품을 보내지요. 이 경우에는 택배가 라이더고, 상품이 음식이라는 게 다르긴 합니다만... 중요한 건 이겁니다. 이 모델에서 수익이 나오는 곳이 없다는 겁니다. 누군가에게 수수료를 떼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리고 인터넷 쇼핑의 수수료는 생각보다 비쌉니다. 많게는 20%까지도 떼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통신의 방식이 뭔데? 뭐가 다른.."


(말을 끊으며)반면 통신은 다릅니다. 이쪽의 주문 정보를 저쪽에 넘겨주는 것 자체가 수익을 발생시키니까요. 이런 방식을 생각해 봅시다. 이용자가 배달앱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주문하면 주문 정보가 이용자의 SMS를 통해 음식점으로 전달됩니다. SMS는 평문일 수도 있고, 암호화된 전문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상점에서는 단말기 -업주의 휴대폰일 수도 있고, 별도 설치된 단말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별도 설치된 단말기인 게 좋겠죠. 회선료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 단말기로 주문 정보를 받는 겁니다.


자, 기존의 유통 기반의 배달앱은 업주에게 받는 수수료에 의존하지만, 우리의 통신 기반의 배달앱은 SMS라는 수익모델을, 그리고 회선료라는 수익모델을 기반에 깔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가격경쟁력이 생깁니다.


"OK, 지적할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우선, 그걸 지금 만든다 치면 어떻게 팔 건데?"


마침 지자체들이 공공 배달앱을 만든다고 합니다. 마치 지역화폐처럼 각 지자체 별로 하나씩 만들어서 운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통신 모델로 들어가면 입찰할 때 공공성 -그러니까 수수료 무상- 부문에서 점수를 많이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별도 어플을 만들 것도 없이 계열사인 OOO에서 만든 다이얼 앱에 음식 배달 기능만 추가하는 걸로 빠른 출시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도 지역 배달음식 전화번호를 소개하는 기능이 있던데, 여기다가 주문-결제-정산 기능만 추가하면 바로 상용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거기다가 계열사인 XXX가 하는 모바일 상품권을 얹으면 배달앱이 하는 광고 사업도 할 수 있고요. 계열사 사업을 위한 플랫폼이 될 수 있습니다.


"흠.... 재미는 있는데, 실용적이진 않네. 그보다 통신의 영역에 유통이 들어오는 걸 막는다는 건 괜찮네. OO팀장, 그거나 더 파 봐. 통신으로 하는데 유통 플랫폼이 들어오는 게 뭐가 있지?"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퀵서비스도 있고.."
"그래. 그런 것들을 플랫폼으로 묶는 게 괜찮겠네."
"더 찾아보고 별도 보고 드리겠습니다."


어... 그럼이 건은....?


"흥미로운 얘기 잘 들었고, 여기까지 하지."
"수고하셨습니다."


아.. 네.. 그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건은 개인 프로젝트로 돌려야겠군요. 일단 변리사부터 만나봐야겠고요. 나중에 봅시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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