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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어 Oct 03. 2020

신사없(4)

금융 :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가전략 단위로 놀아 봅시다.

그냥 재미있자고 하는 얘기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아 주세요. (작업표시줄의 시계를 흘끗 보고) 불금에 퇴근시간까지 한 20분 정도 남았는데, 특별히 할 일도 없으니 시간이나 때우자고 하는얘깁니다.


"뭔데요? 자꾸 자락을 까는게 이상한데?"


지금부터 매우 황당한 아이디어를 할 거거든요. 그냥 잡담의 소재로 꺼낸 거니까 감안해 달라는 거죠. 지난번에 UV 사업 얘기했을 때 처럼 파고들지 말아달라고요.


(수첩을 덮으며) "아, 뭔지 한 번 들어나 봅시다."


얼마 전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국가산업 거리를 찾았어요. 그것도 금융 분야에서.


"흐음..."(못 미더운 눈초리)


코로나19가 대유행을 하면서 리쇼어링(Reshoring)이 확대되는 추세는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질병 창궐로 인해 해외 생산기지가 폐쇄되거나 수출입에 차질이 생김으로써 우려되는 손해가 글로벌 소싱의 이익보다 커짐에 따라서 생산기지를 보다 안전한 본국으로 옮기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글로벌 기업들과 이에 딸려 있는 납품기업들이 질병관리가 잘 되는 곳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미국이 그걸 주도하고 있다는 것은 좀 아이러니 하지만... 그래서요?"


지금 코로나19도 있지만, 앞으로도 신종 감염병이 계속해서 나타날 것인 만큼 이제는 질병통제 능력이 국가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다들 이야기를 하고 있는 부분이지요. 아마도 이 국가단위의 역량을 평가하고 이에 따른 리스크 수준을 책정하기 위한 연구가 각국 중앙은행이나 글로벌 보험사들에서는 진행이 되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글로벌 기업이 이 공장을 운영하느냐 마느냐, 이 회사를 공급선(supply chain)에 유지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려면 개별 회사나 시설 단위에서도 리스크가 책정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감염병 예방 능력이 개별 생산시설이나 납품기업의 중요한 경쟁우위의 원천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작업장 내 감염병 예방에 대한 컨설팅을 하자? 금융이라면서요?"


아, 이 분 김 빼는데는 일가견이 있으시네. 거의 근접했는데 끝까지 좀 들어 봐요. 그런게 그냥 덜컥 만든다고 만들어 지는게 아니잖습니까. 내가 늘 말하는 거지만, 무엇인가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선행단계의 작업과 그 산출물이 있어야 한다고요.


가장 먼저 떠올랐던 아이디어는 인증서(certification) 발행 사업이었어요. 산업시설에서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 갖춰야 할 설비, 프로세스, 전문인력, 외부공조체계 등에 대한 요건을 정의하고 이 요건을 갖춘 시설에 대해서 안전 인증을 해 주는 것이지요. 마침 코로나19 방역에서 우리나라의 질병관리청이 가장 좋은 성과를 내고 있으니 이 곳에서 직접 발행하거나 또는 이 곳의 자문을 받아서 다른 기관에서 발행하는 것이 좋겠다고도 생각을 했었고요.


"뭐, 인증서 장사만큼 날로 먹는 사업도 드물긴 하죠. 그런데 회사들이 그 인증서를 왜 사죠? 어떤 효용이 있다고?"


일단 시장에 보다 정확한 리스크 추정값을 제공해 준다는 점을 들 수 있지요. 지금은 국가 리스크만 가지고 생산설비의 안전성을 평가해야 하는데, 그걸로는 정확할 수가 없거든요. 아무리 정부가 방역을 잘 한다고 해도 개별 회사나 작업장에서 예방조치를 잘 하지 않거나 작업환경이나 프로세스가 방역에 적합하지 않다면 국가와는 무관히 리스크가 커지지 않겠어요?


가장 단적인 예가 쿠팡 물류창고 집단감염 발생 건이지요. 국가 단위에서 방역을 잘 해서 작업장에 감염자가 들어갈 가능성은 낮았지만, 작업장 환경이 감염확산을 일으키기가 쉬워서 한 번 감염자가 들어가고 나니까 거기서 집단감염이 터졌잖아요. 그래서 작업장이 폐쇄됐었고요.


개별 작업장의 리스크 까지 고려할 수 있다면, 글로벌 기업들은 생산시설이의 입지나 납품기업을 선정할 때 생산원가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국가 리스크만 보고 생산기지를 정한다면 생산단가가 높은 선진국으로 시설이 몰릴 수 밖에 없지요. 하지만 개별 작업장의 대비 수준이 국가 리스크를 상쇄해 준다면, 그래서 총 리스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내려가 준다면 생산단가가 낮은 개발도상국에도 생선설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니까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고, 작업장의 리스크 수준은 어떻게 산출할 건데요?"


수식으로 이렇게 표현을 해 볼 수 있겠네요. 작업장의 총 리스크는 작업장이 위치한 국가 리스크와 작업장의 자체 리스크의 곱이다.


R = Rn × Rs

s.t.
R = 작업장의 총 리스크
Rn = 작업장이 위치한 국가의 리스크 (국가의 확진자 수, 확진자 증감 통계에서 도출)
Rs = 작업장 자체의 리스크 (설비, 환경, 프로세스 등에서 도출)


"R은 리스크일 거고, n은 네이션(nation)일거고, s는 뭐지? 아 사이트(site)? 그런데, 국가의 리스크는 통계에서 나오는데, 작업장의 리스크는 왜 통계에서 도출되지 않죠?"


모든 작업장에 트랙 레코드(track record)가 있을 것 같지가 않거든요. 특히나 5인이상 작업장이니 10인 이상 작업장 하는 소규모 시설이라면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하더라도 모수가 작아서 통계적 유의성이 떨어질 거고요. 이럴 때에는 리스크를 계량적인 방법으로 산출하기 어려우니 권위있는 기관에서 리스크 값을 얼추 그러하다고 믿어질 수 있는 정도로 지정해 주는 제도적인 방법을 쓰는 편이 나을 겁니다.


"그래서 그 쿼사이(qusi) 한 역할을 하는게 인증서다?"


네. 일단은 '이 정도로 대비를 했으면 리스크 수준이 대충 이 정도가 된다고 치자' 하는 정도로 시작을 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인증서가 어느 정도 트랙 레코드를 쌓아 내면 인증서 자체의 계량화된 리스크 측정도 가능해 질겁니다. 그렇게 정교화 시켜 나가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인증서가 금융은 아니잖아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면서) 금융에서 찾았다면서?"


인증서는 그냥 종이 쪼가리죠. 아무리 공신력 있는 곳에서 나왔다고 해도 그거 하나 믿고 투자를 하거나 거래를 트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투자에 대한 리스크를 질적으로 해소해 주는 기재가 필요하고, 그게 바로 금융이 해야 할 역할인 거예요.


(눈을 가늘게 뜨며) "무슨 기재? 어떤 역할? 무슨 얘긴지 모르겠는데요?"


우리나라엔 기술보증기금이라는게 있지요. 중소기업이 보유한 기술가치를 측정해서 기술을 담보로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보증을 해 주는 곳이에요. 이것처럼..


"그러니까 대출담보를 해 주자?"


보증은 아니고, 보험이에요. 작업장의 리스크에 대해 "감내할 만 한 범위 내에 있다"는 인증서를 발행하고, 이 인증서에 기반해서 입보할 수 있는 보험을 제공하는 겁니다. 일종의 보증보험인 셈이죠. 


"정리를 해 보면, 인증서를 중심으로 보험과 컨설팅을 좌우에 붙인 세트를 만드는 거네요? 이런 건가?"


인증-컨설팅-보험의 연계구조1)


맞아요! 그런 겁니다. 이렇게 세트를 만들어 놓으면 글로벌 보험사를 하나 키워낼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요.


"컨설팅은?"

 

국내의 로컬 컨설팅 업체가 갑자기 글로벌 사업을 전개하는건 무리가 있으니, 이건 글로벌 컨설팅 회사를 끼고 가는게 맞겠어요.


"보험사는 갑자기 글로벌 사업이 전개가 되고요?"


그건... 안 되려나요?


"하아.. 인증기관은 질병관리청이나 별도의 민관 협력기관이 주도권을 쥐고 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컨설팅이랑 보험은 쉽지 않아 보이는데?"


저기, 그러면 같이 이야기 하면서 아이디어를 리파이닝(refining)해 보는건 어때요? 커피 쏠게요.


"됐거든요? 난 이제 퇴근 합니다."





1) 리스크 평가 요소는 예시로 적은 것이고, 제대로 된 요소는 감염병 전문가들과 산업공학 전문가들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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