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장난인 듯 장난아닌
"나는 짜장면이 좋아" "아니, 나는 짬뽕이 좋아. 우리는 잘 안 맞는 것 같아." 비유가 다소 유치한 감이 있긴 하지만 이런 식의 대화를 하고 있노라면 왜 그리 서운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또한 나도 짬뽕을 시켰어야 했나 하며 자책감과 함께 기호의 상실감도 든다. 우린 둘 다 결국은 중식을 좋아하는 거잖아. 그러니깐 그 많은 음식점들 다 제쳐두고 함께 중국집에 앉아서 얼굴 마주 보며 밥을 먹고 있는 거잖아. 내가 짜장면을 더 좋아해서 온갖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다니.
서로 잘 맞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슨 주문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꾸 맞지 않는 것만 찾으려 하고 또 자꾸 생각나게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악순환이다. 남녀가 연애를 하다 보면 서로 맞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것이 비단 남녀 사이에만 벌어지는 감정의 소용돌이겠는가.
'다르다'의 사전적 의미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라고 나온다. 그리고 '맞다'는 사전에 '어떤 행동, 의견, 상황 따위가 다른 것과 서로 어긋나지 아니하고 같거나 어울리다'라고 적혀있다. 그러므로 '맞지 않다'는 '어떤 행동, 의견, 상황 따위가 다른 것과 서로 어긋나고 같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너와 나는 다르다."
"너와 나는 맞지 않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어떤 문장을 선택해서 내뱉느냐에 따라 그 말이 마음속에 따뜻하게 불어올 수도 있고 세차게 휘몰아칠 수도 있는 것 같다. 자칫 마음이 차가워지면 쉽게 지나칠 일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다투기 일쑤다. 싸움은 그렇게 사소하게만 보이는 단어의 용법에 의해 벌어지고 만다.
위의 두 문장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다름을 통해서는 한 개인이 그 자체로 온전히 인정받는 느낌이 들고, 맞지 않다는 것은 곧 어울리지 않음을 뜻하며 그것으로 인해서는 서운함과 미안함의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너와 내가 어떤 때는 같았다가 또 어느 날은 다르거나 하진 않는다. 우리가 관계를 맺기 이전부터 교집합의 영역 없이 너는 너였고 나는 나인 채로 살아왔다. 그리고 그 다름의 크기는 각자가 겪어 온 인생의 크기만큼 일 것이다.
하지만 너와 내가 어울렸다가 어울리지 않았다 하는 건 일상다반사다. '맞다'라는 단어는 마치 물처럼 굽이굽이 흘러가는 말로 보인다. 항상 맞거나, 항상 맞지 않거나 그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행동, 의견, 상황 따위에 따라 유연해지는 것이 바로 '맞음'인 듯하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오래되다 보면 마치 처음부터 같았던 것으로 착각할 때가 종종 있다. 그때마다 우리는 처음부터 달랐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관계 맺음이 지속되는 동안 그 속에서 동질성을 감지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면 그것은 우리가 잘 맞았다는 것으로 인식해야 하며 그러한 교집합의 영역에는 항상성이 없음도 역시 자각해야겠다.
내가 너와 다르거나 맞지 않는 것은 모두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것 같다.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은 너 또한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차별, 독선, 독단을 경계하여 온전하게 다름을 인정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면 우리가 잘 맞는 것은 맞는 대로 맞지 않는 것은 맞지 않는 대로 그렇게 물 흘러가듯 받아들이기 수월해지지 않을까. 다름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가자. 다름 속에서 공존하는 것이 곧 조화로움이라고 믿기에. 조화로움이 결국 잘 맞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