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만 <상처 난 거리> 사진전 리뷰
"울어요?"
"안 웁니다."
상수는 며칠 밤잠을 설쳐서 눈이 충혈되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중략) 사랑이 있다고 하면 대개 차오른다거나 벅찬다거나 하는데 지금 상수는 무언가가 급하게 빠져나가 완연히 달라진 바깥의 온도와 내면의 온도를 느꼈다. 마치 겨울날의 창처럼 그런 격차가 생겨나면 마음에는, 적어도 이 순간 상수의 마음에는 축축한 슬픔이 배어나는 것 같았다. 울고 싶었다. 울 수는 없지만. - <경애의 마음>, 김금희
상처 입은 자들은 밖으로 울지 않는다. 그 상처를 누군가 발견해 주기 전까지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김중만의 <상처 난 거리> 전이 열리고 있다. 그는 나무를 찍었다. 늘 거기에 서 있고 그래서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가로수들을. 바람에 연약하게 흩날리고 세찬 장대비에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보면서 사진에는 없는 나뭇잎들을 생각했다. 싱그런 여름철, 한아름씩은 달려 있었을 나뭇잎들을. 좋은 사진은 프레임에 존재하는 것뿐 아니라 거기에 부재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법이다.
김중만은 그의 작업실로 향하는 1km 남짓의 중랑천 둑길에 있는 나무를 9년 간 촬영했다. 사실 나무를 찍으려고 맘먹은 건 그보다 4년 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찍지 않았고, 그냥 나무를 바라봤다. 작업실을 오가며 4년을 매일매일. 새내기 대학생이 졸업까지 했을 그 4년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나무가 이젠 찍어도 된다고 그에게 응답했다고 한다. 그는 13년이란 세월을 나무와 함께 보냈다. <상처 난 거리>에는 그 긴 시간과 대화의 기록들이 담겨 있다.
이 강박적이면서도 지난한 작업 방식을 보며 사진가가 가져야 할 윤리성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은 부득이 피사체에 대한 약탈적 속성이 있는 예술 형식이다. 사진가는 피사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셔터를 눌러 피사체를 프레임 안에 완전히 박제할 수 있다. 이러한 사진의 속성은 사진을 회화와 구분 짓고 현대 예술의 대표 장르로 만든 차별점인 동시에, 사진가가 자아도취에 빠져 피사체에 무감각해지게 만드는 부정적 계기가 되기도 한다. 사진가에게 필요한 시간은 셔터를 누를 단 0.01초 남짓으로도 충분하다. 그런 습관에 길들여지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편협해진다. 사진가가 찍는 건 세계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인식이다. 깊은 눈을 갖지 못한 사진가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한지 위에 흑백으로 인화되어 액자에 담긴 나무들은 수묵화처럼 고요했고 아무 말이 없었지만, 35점을 다 보고 나서는 가슴이 조금 먹먹했다. 이전까지 내게 나무는 생명력과 강인함의 상징이었지만, 사실 나무도 사람처럼 버겁기만 한 세상의 무게를 겨우 견디며 서 있는 것이었다. 결국 버티지 못한 채 부서져 버린 나무들도 있을 테고, 팔 한쪽을 잃고서도 살아남고자 안간힘을 쓰는 나무들도 있겠지만 깊은 눈을 갖지 못한 나에겐 다 같아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무를 찍는 게 늘 어려웠다. 나무를 은연중에 풍경으로만 생각할 뿐 나름의 삶과 역사를 가진 생명체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김중만은 풍경 사진에 사용되는 가로 프레임 대신 인물 사진에 쓰이는 세로 프레임으로 나무를 찍었다.
김중만의 나무 사진들은 우리가 타인의 슬픔에 대해 가져야 할 윤리적인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때로 타인의 슬픔을 '해결해 주려고' 한다. 우리의 연민이 금방 식어버리고 위로의 말들이 매번 섣부른 건, 슬픔을 '문제'로 인식하고 신속히 없애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픔은 우리의 예상처럼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때로 상처 입은 자는 위로에 침묵으로 일관하며, 슬픔의 수렁에서 스스로 헤어 나올 의지가 없어 보인다. '난제'를 맞닥 뜨린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속 편한 선택은 무관심과 망각이다. 슬퍼하는 타인을 더 바라보지 않는 것, 아직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냥 잊어버리는 것.
우리가 타인의 슬픔에 대해 유일하게 가질 수 있고, 가져야만 하는 태도는 그 반대여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해결해줄 수도 없고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다. 그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곁에 있어 주고 그의 상처를 응시하려 노력하는 것뿐이다. 진정성의 대부분은 시간에서 비롯된다. 김중만은 나무를 4년간 바라봤고, 비로소 나무가 드러내 보인 상처를 9년간 촬영했다. 전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김중만 작가는 이번 전시가 "본인의 영혼이 몽땅 담긴" 전시라고 말했다. 그에겐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었다.
미술관을 나와 방이사거리까지 향하는 백제고분로를 걸었다. 백제고분로의 나무들이 남긴 낙엽들을 밟으면서 그간 내가 누군가에게 건넸던 위로의 말들을 생각했다. 섣부른 위로가 주었을 상처들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