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 책 리뷰
회사에 다니기 전까지 팀워크란 건 스포츠의 세계에나 있는 거라 생각했다. 취업 준비를 한참 할 때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한 선배가 이런 조언을 했었다. "스펙, 실력, 중요하지.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네가 팀에 잘 맞는 사람인 지야. 네가 아무리 뛰어나도 팀워크를 해칠 것 같으면 회사는 널 뽑지 않아." 어리석게도 그땐 그 말을 흘려 들었다. 취준생만 가질 수 있는 패기였다.
선배의 조언은 후배가 잘 되라는 단순한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돌이켜보면 그 아래엔 중요한 가설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팀워크가 곧 조직의 성과로 이어진다는 것. 채용도 회사 입장에선 막대한 자원이 드는 투자다. 지원자가 미래에 낼 성과를 저울질해 채용 여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채용 시장에서 팀워크가 좋은 인재를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회사에 잘 맞고 적응을 잘해서 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실제 조직의 성과에 더 많이 기여한다.
팀워크는 최근 서점가에서도 화두다. CEO의 성공 스토리로 가득 차 있던 경영 섹션(ex: GE의 잭 웰치)은 개인보다 팀을 중시하는 실리콘 밸리 기업 문화(ex: 구글)를 다룬 책들로 채워지고 있다. 리더십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국내 기업들도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팀 중심의 조직 문화를 앞다퉈 받아들이고 있다. 현대 조직에게 좋은 팀워크의 구축은 일종의 정언 명령이 되었다.
문제는 좋은 팀워크를 만드는 법이 퍽 묘연하다는 점이다. 따뜻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형성하면 될까? 아니면 자유로운 토론 문화? 근데 그런 분위기와 문화는 대체 어떻게 만들까? 이처럼 막막한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역으로 최고의 성과를 낸 팀들을 분석하는 것이다. 좋은 팀워크 없이 그들이 성공했을 리 없다.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는 최소 10년 이상 각 분야에서 1%의 성과를 낸 조직들을 분석하고, 그들이 가진 3개의 공통점을 귀납적으로 추려냈다. 당신이 현재 속해 있는 조직도 이 3가지만 잘하면 나아질 수 있다.
2012-13 시즌 NBA 결승전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상대팀 마이애미 히트를 3-2로 몰아붙이며 우승 문턱까지 갔다. 하지만 6차전에서 뼈 아픈 역전패를 당했고, 7차전까지 내리 지며 우승 트로피를 빼앗겼다. 농구 역사에 남을 최악의 패배였다. 선수단과 코치진, 팬들 모두 분노하고 좌절했다. 단 한 사람만을 빼놓고. 경기가 끝난 후 가진 시즌 마지막 저녁 식사에서 스퍼스의 감독 포포비치는 다음과 같이 행동했다.
포포비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문으로 들어오는 선수들을 일일이 반겼다. 어떤 선수에게는 포옹을, 어떤 선수에게는 미소를, 어떤 선수에게는 농담을 건네고 가볍게 팔을 잡았다. ... 마치 결혼식장에서 하객을 접대하는 신부 아버지처럼, 포포비치는 모두를 반기고, 모두와 대화하고,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질책과 분노로 가득할 뻔한 자리에서, 선수들은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 中
소속 신호는 '집단 내의 안전한 교류를 형성하는 일련의 행동'을 뜻한다. 눈 마주치기, 스킨십하기, 활발히 대화 하기 등이 소속 신호의 사례들이다. 포포비치가 한 행동들은 일종의 소속 신호다. 그도 팀의 수장으로서 누구보다 패배에 상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먼저 나서서 '우리는 여전히 한 팀'이라는 신호를 선수들에게 보냈다. 시즌은 아쉽게 끝났지만, 팀이 끝난 건 아니었다. 그다음 시즌 샌안토니오는 결승전에서 마이애미 히트를 다시 만나 보란 듯이 설욕하며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직장에서 실수를 하고 나면 일이 손에 안 잡혔던 경험이 다들 있으리라. 우리 뇌는 실제 심리적인 위협감만 느껴도 기능이 저하된다고 한다. '우리가 이어져 있다'는 소속 신호는 그런 위협 요소들을 제거하고 직원들이 안전함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팀워크가 좋은 조직의 회의실은 소속 신호로 가득하다. 직원들은 서로 시선을 마주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집중해 경청하며, 자주 고개를 끄덕인다. 부장님이 주로 발언권을 독점하는 한국의 회의 문화와는 정반대다.
실리콘 밸리 기업들이 식당이나 카페와 같은 업무 외적 공간에 공들이는 것도 직원 복지의 관점이 아니라 소속 신호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직원들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교류하는 환경일수록 소속 신호가 더 발산된다. 실제 한 기업에서 동료들끼리 매일 15분씩 커피를 마시도록 한 결과, 직원들의 생산성이 20% 향상되고 이직률이 하락했다. 이처럼 소속 신호는 자연스레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높일 뿐 아니라 직원들의 생산성까지 향상한다.
팀워크가 좋은 조직의 두 번째 특징은 구성원들끼리 소위 '취약점', 자신의 실수나 잘못 혹은 부족한 점을 서로에게 편히 드러낸다는 점이다. 미국 최고의 특수 부대인 네이비실은 매 군사 훈련 이후 실시하는 '사후 평가(AAR, After Action Review)'를 통해 부대원들이 훈련에서 했던 각자의 실수를 공유하고 함께 토론하도록 권장한다. 사후평가는 안건도 정해져 있지 않고, 기록도 남지 않기 때문에 부대원들은 계급장을 떼고 마음껏 털어놓는다.
네이비실이 빈 라덴 암살 작전을 수행할 당시, 급작스런 난기류로 헬기 1대가 추락하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작전 지휘부에서 마저 탄식이 나왔다. 예기치 못한 변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원들은 작전 개시 40분 만에 빈 라덴을 암살하는 데 성공한다. 수 차례의 작전 시뮬레이션과 사후평가를 통해 쌓은 팀워크가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빛을 발한 것이다.
취약점을 꺼내놓고 말하는 게 중요한 이유는 그 과정 자체가 팀과 팀워크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동료의 도움을 받으면서,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일할 때 더 큰 성과를 내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 서로의 역할을 확인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동료에 대한 신뢰도 자연스레 높아진다. 네이비실의 한 대원은 사후 평가를 하면서 '모든 부대원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고,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수준의 신뢰를 쌓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조직에서 "이건 정말 못하겠어요.", "이건 제 실수예요."라고 자신의 한계나 잘못을 인정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취약점을 드러내는 게 힘든 이유는 무엇보다 상사나 동료로부터 쏟아질 비난과 질책이 두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패나 실수를 용인하는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을 가장 성공한 회사라기보다 가장 편하게 실패하는 회사로 만들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아마존의 흑역사로 손꼽히는 '파이어폰'의 개발 팀은 실패를 딛고 AI 스피커 '에코'를 개발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Don't be evil."(악해지지 말자). 외부에도 많이 알려진 이 모토는 구글 직원들이 준수해야 하는 행동 강령(Code of Conduct)의 첫 문구다. 팀워크가 좋은 조직들의 마지막 특징은 구글처럼 조직이 지향하는 바를 직관적인 말 한마디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잘 만들어진 '우리만의 이야기'는 구성원들의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모을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좋은 팀워크의 기본 전제는 '우린 같은 팀'이라는 구성원들의 인식이다. 스토리텔링이 조직에게 중요한 이유는 좋은 이야기는 구성원들에게 단순한 '소속감'을 넘어서 동질적인 '정체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정체성이 형성되면 구성원들은 그 정체성에 맞는 행동 양식과 규범을 일관되게 준수한다. 구글의 모토는 단 한 줄에 불과하지만, 구글의 임직원 모두가 높은 윤리적 기준과 도전적인 목표를 가지고 일하게 만든다.
"실수가 파도라면, 종업원들은 곧 서퍼나 다름없다."
"말은 적게, 행동은 많이"
"좋은 아이디어보다는 좋은 사람들에게 투자하라"-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 中
어떤 조직들은 때로 외부(기업을 예로 들면 고객, 시장, 경쟁사 등)에 지나치게 신경 쓴 나머지, 내부 구성원들을 챙기는 데 소홀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부의 신뢰와 지지가 흔들리면 다른 모든 것들도 무너지기 마련이다. 성공적인 조직들은 내부 구성원들을 항상 최우선 순위에 둔다. 위에 첫 번째로 인용한 글은 뉴욕 유명 레스토랑의 모토다. 접객을 하는 서비스업 대부분이 고객을 '왕'으로 삼는 것과 달리 이 레스토랑은 '종업원'이 우선이다. 그럼에도 고객에게 언제나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때로는 집단 그 자체만 잘 유지해도 '다른 것들은 저절로 따라'올 수 있다.
좋은 팀워크를 만드는 방법은 타인과 인간적이고 깊은 관계를 맺는 과정과 굉장히 유사하다. 따뜻한 스킨십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소속 신호 보내기), 그들이 힘들어할 때면 지지를 보내고(취약점 드러내기),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야기 만들기). 거창해 보이는 조직 문화란 것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아닐까. 그때 그 선배가 한 말이 맞았다. 실력보다 인성부터 갖추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