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결 Oct 24. 2022

다 잘될 거야, 잘 지나가게 해 주세요

아이의 소원, 나의 소망

둘째는 좀 특이한 구석이 있다.

소심한 듯하면서도 대범하고, 대범한 듯하면서도 엉뚱한 곳에서 엄청 소심하다. 지금의 소심함은 둘째의 몸에 대한 걱정인데, 누가 들어도 '아이고 꼬맹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말할법한 것.


예를 들면, 지금 둘째의 팔꿈치 부분에 보습이 제대로 안됐을 때 나는 것 같은 뾰루지 같은 것들이 나 있다. 팔꿈치 정 중앙에는 약간 긴 타원형 모양의 긴쪽 지름이 약 1센티 정도 되는 뭔가가 튀어나와 있는데, 처음엔 작게 시작했다가 점점 커지더니 지금의 크기가 되었다. 그 부분은 나도 조금 걱정이 돼서 병원에 가보자고 했는데 병원 가는 게 무서웠던 꼬맹이는 일단 로션을 열심히 발라보는 걸로 얘기가 되었고, 꾸준히 관리해주니까 뾰루지 모양의 작은 것들은 다 없어지고 가장 큰 크기의 튀어나온 부분도 어느 정도 크기가 줄었다.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아서 병원은 안 가기로 했는데, 둘째는 계속 걱정이 되는지 틈만 나면 '엄마, 괜찮겠지? '하고 물었다.


또 다른 걱정 하나는 꼬맹이의 눈이다.

눈 안에 뭔가가 만져지는 듯한데 아픈 건 아니고 약간 걸리는 정도인 듯. 안과에 갔다 왔는데 알레르기 때문인 것 같다고 안약을 처방받아 왔다. 그 뒤 계속 안약을 넣어도 꼬맹이의 안 좋은 느낌은 해결되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물었다. '엄마, 괜찮겠지?'



'엄마 괜찮겠지? 나 무서워...'라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하는 둘째. 요즘 내가 딱 둘째와 비슷한 상태라, 둘째가 그 말을 할 때마다 '괜찮아..' 대답하면서 나 자신에게도 말한다. '괜찮아..'




약간 걱정을 사서 하는 타입이긴 하지만 요즘처럼 심하진 않았는데, 일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아무것도 아닌 것까지 두렵게 만들고 있었다. 복직 후 일에 적응도 덜 된 상태에서 반년만에 다른 업무를 맡았고, 그게 하필이면 또 민원이 있는 일이었다. 발령 당일부터 민원에 시달리다 보니, 이제는 관련된 전화번호만 봐도 가슴이 철렁했고, 그쪽에서 뭔가를 요구하고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기면 걱정 탓에 그 일이 해결될 때까지 우울했다.


처음엔 드라마를 보면서 문제를 회피했다. 우울하니까 즐거운 걸 봐야지, 하는 생각에 드라마에 빠졌다. 업무와 꼭 해야만 하는 집안일이 아니면 그 외의 시간은 다 드라마를 보면서 두려움을 잊었다. 하지만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두려움은 더 커져만 가고 어느 날 이렇게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챙김 책을 들추기 시작했다. 업무가 바뀌지 않는 이상 이런 문제들은 계속 생길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멘탈을 강화하는 것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 챙김 책을 보는 동시에 내가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책도 함께 읽었다. 그러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인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주 작은 차이라도, 노력하니까 뭔가 미미하게 조금씩 변화가 생기긴 했다.


우선 나 혼자 낑낑대지 않고 옆에 동료에게 의논하고 묻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들의 조언을 들으면서 (가령 그런 걸 왜 벌써 고민을 하냐, 그 일이 닥치면 고민해라 등의 말) 그 말이 튕겨나가지 않고 마음에 조금씩 박히기 시작했다.




월요일은 또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러 출장을 가야 하는 날이었다. 일요일 저녁, 주말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불안에 한껏 지쳐서, 자기 전에 묵주를 들었다. 기도를 하는데 옆에서 꼬맹이가 또 속삭이기 시작했다. '엄마 언젠가는 피부에 난 것도 다 없어지고, 눈도 괜찮아지겠지? 엄마 나 무서워...'


묵주를 들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던 나는 꼬맹이에게 말했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내 말을 듣던 꼬맹이는 혼자서 중얼중얼 읊기 시작했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다 잘 지나가게 해 주세요.'

그게 꼭 내게 들려주는 말 같았다.



결국  우리 둘은 같이 묵주를 꼭 쥐고 잠들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일이 우리 둘에게는 계속 기도하는 마음이 되는 불안. 그 작지만 큰 불안을 묵주를 잡은 손으로 꼭 쥔 채.




출장 나갔던 일은 큰 갈등 없이 한 고비 또 넘겼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란 걸 안다. 문제는 또 발생할 것이고, 나는 또 불안에 떨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책을 읽고 지금의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다 보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을 믿는다. 우리 꼬맹이도, 나와 같이 나아졌으면 좋겠다. 괜찮아질 거야. 다 잘 지나갈 거야.



사무실에 있는 화분이 이렇게 말라죽었다. 어쩜 내 마음도 이 상태였는지도 모르겠다  죽어버린 식물을 뽑아 버렸더니 빈 화분이 남았다. 이제 이쁜 새 꽃을 심을 차례다
























작가의 이전글 이뻐! 괜찮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