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 2번째 이야기>
아르바이트 출근길에 늦어 급하게 택시를 잡아 탔다. 대학교 앞으로 가달라는 부탁에 기사님은 나를 백미러를 통해 훑어보시곤 ‘신입생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요, 졸업반이에요’라는 대답을 미소와 함께 건넸다. 다시 기사님은 ‘그럼 25살쯤 됐겠네?’라며 내 나이를 어림짐작했다. 나는 다시 ‘아니요, 27살이에요’라는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백미러를 통해 기사님의 커다래진 눈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기사님은 나의 삶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아휴, 학교를 늦게 간거에요? 휴학을 오래한 거에요?’ 기사님의 질문이 많은 생각을 일으켰다. 나는 다시 대답했다. ‘학교도 늦게가고, 휴학도 했네요...’ 기사님은 이제 혀를 끌끌 찰 뿐 더 이상 질문을 하시지 않았다. 관심이 참견으로 마음을 관통했고 나는 무언가 구구절절한 사연에 대해 뱉어내고 싶어하는 입술의 흔들림을 느꼈지만, 입만 아플 뿐이라고 마음을 다독이며 입술을 다물었다.
기사님은 나의 어떠한 부분이 안타까웠기에 혀를 끌끌 찼을까? 허송세월을 보냈을 것 같은 모습이 기사님을 안타깝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평균 보다 조금은 늦은 삶을 살아온 내가 겪었을 고생을 어림짐작해 본 것이었을까? 나는 후자라 생각 하고 싶다. 대학을 2년이나 늦게 가며 겪었던 고통, 그리고 휴학을 1년 동안 하기로 결심을 하게 했던 순간과 상황들, 어느덧 나는 조금씩 정답과 평균 값에서 멀어져 살아가고 있었다.
나를 평균에서 벗어나게 만든 3년이, 우리 사회엔 암묵적 규칙인 ‘사회적 알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우린 시기적절하게 언제 대학 입학을, 졸업을, 취업을, 그리고 결혼을 등등 그 시기를 놓치면 마치 낙오자처럼 취급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에게 삶을 포기하게 만들어버리는 극단적인 상황의 압박감까지 쥐어주곤 한다. 물론 사회적 알람을 맞추어 살아가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지독한 정답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 모아져 최근 젊은 세대들 속에서 삶을 즐기는 다양한 방향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주변으로부터 안타까움의 눈총을 받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체적으로 질문하고, 가치를 추구하며 노력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나로서 한번뿐인 삶을 살아가다면, 그리고 이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면 모든 나의 가능성을 펼치며 경험하고 싶다. 오히려 다른 정해진 길을 걷는다면 큰일이라도 날 듯 하는 걱정은 스스로의 가능성을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회 속 틀에 나를 맞추고 재단하지 않고 나만의 올 곧은 길을 걸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