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풍헌
관풍헌은 영월 객사의 동헌으로 조선 태조 7년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하시던 중 홍수를 피해 이곳으로 처소를 옮겨 머물다가 사약을 거부하고 목매어 자살한 곳이다. 1997~8년에 전면 보수하였다.
야사의 기록에 의하면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들고 왔다. 차마 전하지 못하고 엎드려 있자, 단종이 스스로 목을 매고는 줄을 창밖을 내어 당기게 했다고 전해진다. 사약을 거부하고 자결한 것이다. 즉위한지 5년, 17세의 나이였다.
자규루
자규루
자규루(子規樓)는 세종 10년(1428년)에 창건, 신숙근이 중건하였다. 신숙근은 연산조에 영월군수를 역임하였다. 단종이 관풍헌에 잠시 머물렀고, 이 누각에 올라 자규사 및 자규시를 읊을 것을 계기로 자규루로 불리게 되었다.
선조 대에 큰홍수로 인하여 이 누각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민가가 들어설 정도로 폐허가 되었으나 정조 때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관풍헌 앞 마당은 큰 공간(마당)으로 남아 있다. 넓은 공간에 듬성듬성 풀이 자라고 있다. 답사 당일 엄청난 무더위가 이어졌으나 청령포, 장릉을 찾는 관광객 및 답사객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관풍헌은 아무도 없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단종의 흔적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방치된 이 공간을 활용하여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단종이 그랬듯이 시를 짓는 백일장을 여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장릉의 한복 대여 장소를 옮겨와도 좋을 것 같다.
단종이 영월 객사에 머무는 동안 자규루에 올라 지었다고 전해지는 자규시이다.
원통한 새 한 마리 궁에서 쫓겨나와
외로운 몸 그림자 푸른 산 헤매네.
밤마다 자려 해도 잠은 오지 않고
해마다 한을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는구나.
울음소리 끊어진 새벽 산엔 어스름 달 비추고
봄 골짜기엔 피 토한 듯 떨어진 꽃이 붉어라.
하늘은 귀 먹어서 이 하소연 못 듣는데
어찌하여 서러운 이내 몸 귀만 홀로 밝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