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을 심기 전에 밭을 조성할 때에는 밑거름이나 비료를 밭에 살포한다. 이때에는 힘은 좀 들어도 특별히 유의할 건 없다. 골고루 잘 뿌리면 된다.
자라는 모종에 비료를 줄 때에는 뿌리는 게 아니고 모종 옆에 한 움큼씩 놓거나 묻어야(주입해야) 한다. 이때에는 앉거나 구부려서 해야 하니 힘도 더 들고 모종에 닿지 않게 해야 하니까 신경을 곤두 세워야 한다.
금년 우리 깨농사, 참깨에 더 집중하다 보니 들깨는 파종이 다른 해보다 더 늦었다. 그래서 한 달 여 전에, 아래 큰 바위 밭의 들깨 모종 곁에 손으로 비료를 한 움큼씩 놓았는데, 바로 비가 내렸는데도 비료가 모종에 닿아서 그랬는지 모두 녹아내려 전멸해 버렸다. 악양 농사 20여 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이는 내게, 농사란 아무리 경력이 길어도 해마다 초보임을 또 한 번 체감시킨 사태였다.
비료 주입기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여러 해 전부터 하고 있었음에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사태를 계기로 주문, 오늘 도착했다. 받는 즉시 개봉하여 이 걸로 들깨 모종 옆에 요소 비료를 주입했다.
사용해 보니까 쪼그리고 앉아 비료를 놓을 때보다 힘도 훨씬 덜 들고 시간도 비료도 절약된다. "진즉에 구해서 사용할 걸" 하는 후회가 머리를 슬쩍 스쳤지만, "늦었어도 착수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
비료 주입기 이거, 곧 시작될 김장농사철에 유용하게 쓰이게 된다. 아래 큰 바위 밭에서의 들깨 설농을 여기 위의 평상바위 밭에서 만회해야 한다. 이 비료 주입기의 도움을 받아서.
일을 마치고 고개를 드니 오른 편의 청학이 골 형제봉에서는 지는 해와 구름이 빛의 조화를 연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