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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Oct 25. 2023

범이와 초승달

070818토


    

범이 첫 대면

     

‘범이’는 진돗개 이름이고 ‘호비’는 골든레트리버 이름이다. 둘 다 수컷이다. 호비는 범이 보다도 한 달 후에 길뫼재로 왔다. 하동 악양의 동매마을 뒷산 기슭에 있는 내 작은 농원에 7월과 8월부터 거주하게 된 개들이다.      


유소년 시절에 우리 집에 있었던 개 말고는 가까이해 본 개가 없고 길러본 개도 없다. 둘째 아이는 자랄 때 애완견을 한 마리 기르자고 유달리 졸랐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아파트인지라 들어줄 수도 없었다. 수의학을 전공한 동료 교수에게 자문했더니 극구 말렸고 편 또한 개나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지라 들어줄 수가 없었다. 이 점은 둘째에게 미안해하는 중의 하나이다. 아무튼, 그런 나에게 개를 기를 일이, 개와 더불어 살 일이 이리 생길 줄은 짐작 못 하고 있었다.                                               


8월 4일 토요일, 삼천포의 달묵 선생의 금암 요에 갔다. 부산의 집에서 혼자 출발했다. 곧장 삼천포로 향하지 않고 이곳 악양 동매마을의 길뫼재에 먼저 들러 밭일을 좀 한 후 새로 생긴 다리인 사천대교를 건너서 갔다.

금암요의 저녁, 가마에 불을 붙이는 모습 촬영이 시작되었다. 안성과 일산에서 온 두 분의 사진작가가 셔터를 여러 번 누른 후 거실로 들어와 빙 둘러앉았다. 더위와 비가 짓누르는 여름밤이었다. 비는 폭우였다. 이런저런 담론 중에 달묵 선생이 불쑥, “혈통 좋은 진돗개 한 마리 주겠으니 산기슭 생활에서 함께 해보라”라고 제안했다. “개랑 함께 있으면 홀로 지내는 산기슭 밤이 든든할 것이며 이루게 될 교감도 경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금암요에는 진돗개가 많았다. 그중에 가마 곁에 묶여 있는 개 앞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이름은 ‘범이’라고 했다. 진돗개의 특징을 상세히 말해 주었다. 난 개에 대해서 그리고 진돗개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8월 4일 늦은 밤에 이렇게 범이와 처음 대면했다. 만져 보라고 했다. 그래야 금방 친해진다고 하면서 망설이는 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진돗개는 만지는 것을 싫어하는데 그럴수록 스킨십을 해야 친해질 수 있다고 말하면서. 만졌더니 특이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범이와 첫 대면은 비가 오는 밤에 이렇게 이루어졌다.     


내리던 비가 오밤중에는 더욱 거세어진다. 날이 새면 함께 동매리 길뫼재 농원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하동으로 내려올 편과 합류할 예정이었는데 빗줄기의 굵기로 봐서는 하동행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부산 집의 편에게 전화했다. 내려오지 말라고.      


날아 샜다. 비는 짐작대로 폭우 수준이었다. 함께 가려던 하동행을 포기하고 사진작가 두 분은 자기들 처소로 향하고 난 다시 악양의 길뫼재로 향했다. 폭우 중에 섬진강 변 길을 지나는 건, 그것도 산기슭으로 가는 건 무모한 행동 아니냐고 편이 걱정을 크게 했다. 난 조심 운전하겠노라고 안심시키고는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섬진강 변을 따라갈 때 다행히 빗줄기는 가늘어졌고 악양 초입에 들어섰을 때에는 거의 멎었다.


면 소재지 마을의 K 집 앞에 차를 세웠다. 사실 달묵 선생이 범이를 데리고 온다고 했을 때 거절해야 했었다. 개를 기를 조건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집은 급히 마련한다고 치더라도 내가 상주하는 것이 아니어서 사료와 물을 제때에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아무튼, 개는 며칠 후에 오게 되어있다. 이런 사정을 K에게 말했더니 그러면 자기 집 마당에 매어놨다가 부산에서 내려와 길뫼재로 올라가는 길에 데리고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내가 그런 식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은근슬쩍 내비쳤더니 그가 이렇게 대안을 제시해 준 것이다. 마침 그 집 마당에는 비어있는 개집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대안도 찾아봐야 했다.   

  

길뫼재에 도착했다. 바로 앞의 밤 숲에서 염소 소리가 났다. 내가 염소 아저씨라고 부르는 동네 분이 올라와 있다는 신호다. 그래서 거기로 갔다. 밤 숲의 염소 우리 앞에 마침 개집이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 여기에서 개를 좀 돌봐줄 수 있겠느냐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렇게 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하여 두 번째 대안까지 마련되었다. 이렇게 해서 범이를 데리고 와도 되겠다는 확신을 막연하게나마 하게 되었다.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하려 한다고 걱정을 태산같이 하는 편을 설득할 용기도 가지게 되었고.   

   

범이를 데리고 와도 좋다는 전화를 달묵 선생에게 할 차비가 얼떨결에 그럭저럭 되었다.      


범이 오다     

13일 월요일, 그치지 않는 폭우 중에 범이 왔다. 삼천포 금암요 주인이신 달묵 선생이 범이를 자기 차에 싣고는 폭우를 뚫고 왔다. 범이는 이제부터 이곳 복호(伏虎) 기슭 길뫼재에서 나와 더불어 생활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막상 범이가 오고 나니 막연하고 앞이 캄캄하다. 면 소재지 K네 집이나 바로 앞의 염소 아저씨 산막에 맡기는 게 여의치 않아 내가 여기서 길러야 하는데 범이를 기르기 위해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범이는 왔다. 컨테이너 하우스 농막 옆의 원두막 아래에 급한 대로 범이를 매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 중에서 우연이라고 이름 붙일 일들이 많다. 난 그 ‘우연’의 덕을 비교적 많이 보는 편이다. 물론 이 우연이라는 것도 따지고 들어가 보면 그리될 소이가 이미 그 이전에 있었기에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내게 일어나는 우연적 결과에 고마움 표할 일을 자주 경험하는 사람이다.      


범이와의 인연만 해도 그렇다. 사실 길뫼재에서 개를 한 마리 기르는 문제에 대해 편에게 서너 번 운을 뗀 적이 있었다. 동네가 앞에 있긴 하지만 인적이 드문 산길 옆이니 개가 한 마리 있으면 든든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편도 충분히 공감했지만, 기른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상주하는 게 아니니 개를 상주시키는 방도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개 문제는 잊고 있었다. 지난 8월 4일 금암 요에 불을 붙이던 날 밤, 두 분 지인과 불타는 금암요 앞에서 이런저런 담론 나누는 중에 달묵 선생이 범이 문제를 꺼낸 것이다. ‘우연’이 인연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름만 해도 그렇다. 내가 머무는 산기슭, 그러니까 길뫼재 자리의 지명이 ‘범 바위 아래 복호(伏虎)’다. 그러니까 산의 형국이 복호 형인데 복호 형의 산 중턱에 또 호랑이가 올라앉아 망을 보았다고 하는 범 바위가 있다는 말이다. ‘동매’라고 하는 같은 이름의 마을도 다시 ‘보코따미’와 ‘가꾸따미’로 나누어진다는 말을 동네 사람들에게서 들었다. ‘따미’는 담, 울타리 즉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하니 보코따미는 복호마을이라는 뜻이고 가꾸따미는 각우(角牛) 마을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밭으로 오르는 길 초입에는 범 얼굴과 소 얼굴을 동시에 가진 큰 바위가 길뫼재를 지켜보고 있다. 이 바위는 십여 년 전의 큰 폭우 때 굴러 내려와서는 이 자리에 멈춰 서, 마을을 폭우로부터 막았다고 하는 바위다. 말하자면 또 하나의 범 바위다. 그런데 달묵 선생이 준 진돗개 이름이 범이다. 우연한 일을 내가 너무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일까? ‘범’이라는 이름의 존재가 내 길뫼재 생활 반경에 다층 구조로 들어오는 경험을 또 한 번 생생히 하게 되는 것이다.                                               


범이 오던 13일 그날 낮 내내 퍼붓던 폭우는 밤이 되자 더욱 기세가 맹렬해졌다. 걱정하는 전화가 편으로부터 서너 번 왔다. 걱정하는 전화가 편에게 또 온다고 했다. 쎄울의 아이들을 대표하여 큰아이도 전화를 했다. 하도 따라 붓는 비였는지라 사실은 나도 이러다가 매몰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면으로는 걱정 없이 편한 밤을 보냈다. 범이 밖에서 밤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 마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날이 새는 기미가 보일 때 여전히 폭우 중이었지만 밖으로 나가 범에게로 갔다. 범은 일어서서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겼다. 상식 밖의 일이었다. 진돗개는 두 번째 주인에게 정을 잘 표시 안 한다던데, 범은 더욱 그렇다는데 표 나게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내가 부산 집에 가고 없을 때 돌봐 주려 K가 왔을 때에도 범이는 꼬리를 흔들더라고 했다.

     

초승달

여러 날 후인 18일 토요일 새벽 5시, 어둑하다. 조금 기다리니 여명이 보인다. 밥을 찬물에 말아서 먹고는 밖으로 나왔다. 범이가 꼬리를 치며 일어서서는 기지개를 켠다. 10시, 범이의 이동줄을 설치하기 위해 쇠말뚝을 콘크리트로 고정시키는 일을 하고서는 안으로 들어왔다. 불더위이니 제발 일한답시고 밖에서 설치지 말라는 편으로부터의 세 번째 경고가 왔다. 가부좌 상태에서 꼼짝없이 책 읽었다. 한숨 자기도 했고 나팔 불기도 했다. 오후 6시를 지나니 해가 기운다. 5시경부터는 범과 나란히 앉아 서산으로 기우는 해를 하염없이 보고 있다.


7시 20분경, 포르르 산새 한 마리 고추 지지대에 앉는다. 알고 보니 곤줄박이다.                                      

7시 반, 길뫼재 문 앞으로 범을 데리고 왔다. 문을 사이로 두고 나와 범은 안팎에서 밤을 새울 참이다. 문턱에 걸쳐 앉아 범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나는 개의 생리를 잘 모른다. 땅을 잘 판다는 말을 들은 바는 있다. 아까부터 연신 돌 사이를 후빈다. 코를 깊이 박기도하고 그러다가 신속히 경계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맞은편 밤나무 숲의 염소 아저씨 미세한 인기척에도 신속히 반응한다. 땅을 굴 파듯이 팠다. 한 30분 그렇게 하더니 옆에 떠 놓은 물을 또 마신다.                                          

7시 40분, 산새는 날아갔다. 소리 없이 갔다. 가는 걸 보지 못했다. 형제봉 아래 신선대가 보인다. 해가 서산을 넘었다. 달이다. 초승달, 손톱달이다. 오늘도 사람 구경 못했다. 가장 많이 구경할 때에도 세 사람 전후인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그것도 저물녘에 이곳을 지나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범이 없었으면 벌써 안으로 들어갔을 시간이다. 초승달, 손톱 달을 하염없이 봤다. 달을 이리 주시하는 것이 얼마 만인가.    

  

7시 50분, 새삼 범이를 확인한다. 길뫼재라고 했지만, 농막이고 집 앞이라고 했지만, 동네와는 떨어진 산 중턱인데, 이렇게 바깥에 나앉아 초승달, 손톱달을 다 보게 되다니, 범이 옆에 없었던 그전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다. 개 한 마리 곁에 두고 있는 것이 시선의 각도를 달리하게 될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아까 낮과는 달리 바람이 선선하다. '달 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가 생각난다. 지금 절실한 것은 문학적 운율의 시가 아니라 대중적 정서의 흘러간 유행가 가사의 한 구절이다. 동무가 생각난다. 부산의 집에 있는 편도 생각나고.      

8시, 앉아 있었던 시간이 제법 길었다. 범이는 조금 전부터 경계자세로 돌입했다. 동서남북 좌우로 시선의 공백을 두지 않는다. 범이에게 “안녕, 잘 자라. 밤을 잘 지켜라”라고 말하고는 컨테이너 농막 안으로 들어왔다. 좀 후에 커튼을 내리고는 편지지를 꺼냈다. 북극성과 북두칠성의 선명한 별빛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편지를 썼다.     

 

8월 18일 토요일, 범이와 함께한 밤은 이렇게 깊어 가는데 밤이 늦도록 잠이 오질 않는다. 초승달도 기울었다.  새벽 1시를 한참 지나서 잠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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