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4292년(서기 1959년)에 나는 축동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이듬해가 시작되자마자 봄이 오기 전에 전체 졸업생 기념사진을 찍는 등 졸업을 준비했다. 이 사진은 그때 찍은 아마 분단 별 사진일 터. 우리 열 명만 담임 선생님을 모시고 찍은 건 아닐 테니까. 담임 선생님 성함은 성환진, 코흘리개 그 시절 동무들 이름을 뒤, 서 있는 줄 맨 우측 ‘나’로부터 출발하여 말해 본다면, 나, 대식이, 남이, 병무, 태모, 영철이, 그 아래 영규, 윤식이, 선생님, 삼제, 수영이 등이다.
사진에서 함께 하고 있는 동무들 중에서 내 이마가 가장 툭 튀어나왔다. 그래서 집에서 형제들이 날 놀릴 때 별명이 짱구, 짱구가 변하여 ‘짜구’로 되었었다. 짜구 머리 내 머리, 그땐 참 싫었었는데 이 짜구 머리 대두(大頭)가 날 지금까지 먹여 살리고 있으니 이제는 나를 이루는 정체성의 일부여서 자부심조차 있다.
단기 4292년(서기 1959년)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그때 일어난 큰일들 중 내 기억 속에서도 남아 있는 일들은 다음의 것들이다 : 교황 요한 23세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자유당 대통령 후보 이승만과 부통령 후보 이기붕 지명. 진보당 당수 조봉암 간첩 죄목 사형, 남부 지방에 태풍 사라호로 수많은 사상자 발생, 금성사가 국산 진공관 라디오 A-501을 처음 생산,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 조병옥 부통령 후보 장면 박사를 부통령 후보로 선출, 정치 깡패 임화수가 희극 배우 김희갑을 폭행한 ‘합죽이 구타 사건’ 발생.
이 가운데 금성사 라디오 첫 생산을 기억하는 건 우리 면에 두 대 들어온 것 중 한 대가 우리 집에 왔었기 때문. 그때 라디오 얼마나 신기하던지….
듣자 하니 이 동무들 중에서 태모와 영철이와 윤식이와 수영이는 벌써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바로 내 옆에 서 있는 대식이에게서 이런 소식을 듣는다. 대식이, 코흘리개 시절부터 성질 좋던 그는 그 성질 지금도 변함없이 좋다. 가곡 ‘가고파’의 말대로, 지금 보니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네! 난 여기서 이렇게 살지만 누구는 하늘나라로 가고 또 그때 동무들 그 누구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소식 모르는지 오래고.
처자들 어미 되고 동자들 아비 된 사이 /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워라 아까워(이은상 시 김동진 작곡 ‘가고파’ 일부)
필카 사진첩을 정리하면서 대식이가 건네준 이 사진을 보다가 문득 그때 그 어느 때가 생각이나 한 감상 적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