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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Sep 27. 2024

지난여름 통영

두어 달 전에 잡은 통영 섬 기행 예정일, 그날이 오늘이다. 강력 태풍일 거라는 '산산'의 영향이 남해 바다에도 미칠 거라고 해서, "과연 배가 뜰 건지, 뜬다고 해도 배를 타야 할 건지" 하는 약간의 혼란 속에 부산 집을 출발했다. 그런데 이거, 남해 고속도로 진입 순간부터 차량이 많아 서행하더니 장유 톨게이트, 창원 시내를 거쳐 '마산 창원 대교'를 건너 고성행 국도, 마지막엔 고속도로 통영에 도착할 것임을 짐작케 하는 '내비의 안내대로 창원 시내로 진입했더니 이것 봐라, 이른 출근 시간과 맞물려 그런지 차량이 아예 거북이걸음 보다 더 느린 속도가 되고 만다. 게다가 내비는 제 딴에는 덜 붐비는 길로 나를 이끈답시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빙 돌아 더 먼 길로 안내하는 것 아니겠는가.     

통영 이순신 공원에 이르는 길을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춘 후 바라본 바다

그렇게 헤매고 있는 중에 예정 시각에 도착한 일행에게서 전화가 온다, "연안 여객선 모두 운항중지" 됐다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 오늘이 그날일 게 뭐람, 가려고 한 비진도와 매물도를 비롯한 모든 연안 여객선 운항이 중지되었다는 말에 맥이 좀 풀리긴 했지만, 40여 분 늦게 도착하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여객선 터미널 주차장에서 피아트 도반들을 보니 풀렸던 맥이 다시 조여진다.     


그래서 닭 대신 꿩, 꿩 대신 닭이라고 섬 기행 대신에 통영 시내의 이순신 공원, 윤이상 기념관, 통영시립박물관 등을 둘러보기로 했다. 난 통영 남망산 조각공원 길만 좋은 줄 알았는데 걸어보니 이순신 공원 길과 그 길 솔숲 사이로 보이는 항구 풍경도 더없이 좋고 통영스럽다.     


맛 좋은 된장국 해물탕 저녁 식사 후 걷는 해안가 산책길, 태풍 산산의 간접 영향을 받는 통영항의 모습은 약간 긴박하고도 드라마틱하다. 어두운 구름이 하늘을 뒤덮으며 점점 더 짙어지고, 바다는 차가운 회색빛으로 변해 간다. 상당히 세찬 바람에 정박해 있는 배들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파도는 부두를 제법 거세게 때린다. 나무들은 강한 바람에 이른바 '삐끼삐끼 춤'을 격렬하게 추고 있고.

숙소에 여장을 푼 후 나선 해안 산책길의 태풍 전전야 하늘 구름

가는 날이 장날, 와서 보니 하필 그날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비진도 매물도 섬기행 대신에 수행한 통영 시내 답사 또 더없이 좋은 산양 일주도로 끝의 커피집 미스티끄의 담론에 이르기까지, 일정을 잘 마치고 맞이한 숙소 잠자리, 비록 출발부터 삐꺽한 나의 하루였지만 긴장감이 점점 높아지는 태풍 전전야의 밤을, 오늘따라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면서 창밖 등댓불 번쩍임 속의 통영항 바람 소리를 자장가로 듣는다.     


다음 날 우리는 통영항 숙소 출발하여 ⇒ 경남 고성 마암면 소재지 벽화 마을을 지나치면서 일별 하고는 ⇒ 장산 숲의 수련 못에 차를 세운 후 빙 둘러 한 바퀴 걸은 후 ⇒ 구절산 폭포암에 땀 흘리면서 올라갔다가 ⇒ 거기서 좀 떨어진 상리면의 문수암에 도착, 전망 좋은 거기서 저기 아래 앞바다 지란만의 풍경에 넋을 잃을 뻔하다가  ⇒ 고성군의 경계를 벗어나서는 진주시 정촌면의 천년에 가까운 수백 년 세월의 유서 깊은 연못인 강주 연못에 도착하여 만개한 연꽃 가득 눈에 담은 후  로터스 커피 앤 베이커리에서 커피잔을 놓고 마주 앉아 잠시 휴식했다 ⇒ 그러고는 다시 경남 사천시의 KAI 항공단지를 빙 돌아 ⇒ 선진성 직전의 항공 우주청(KASA)을 거쳐 ⇒ 선진성을 회전해서는 ⇒ 사천시 유명한 냉면집인 '하주옥 진주 냉면'에서 저녁식사 마치고는 헤어진 후 ⇒ 우린 산기슭 길뫼재로 또 도반들은 부산으로 각각 향했다.    

  

경남 고성 상리면의 문수암

일행과 함께 하는 여정이 아니라면 찾아가는 발걸음 떼기 쉽지 않은 곳들을, 거센 뙤약볕 한낮에도 함께 하는 걸음으로 여러 곳에 발 디뎠다. 가파른 암자를 반복으로 오르내려 숨이 가빠도, 구름이 가려주지 않아 햇살이 뜨거웠어도 통영 고성의 여러 곳을 우린 이리 보고서 배우고 저리 보면서 즐겼다.    

  

문수암에서 내려다본 자란만 풍경. 저기 보이는 암자는 보현암

길뫼재에 도착하니 오후 7시, 테루가 눈망울을 초롱이 밝히고서 편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테루와 우린 산기슭 세 식구, 테루는 밤을 지키고 우리 내외는 그 밤 속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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