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자부심 1
어머니께서는 자신의 친할아버지께서,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매우 귀한 칙명을 받으신 분이라는 사실에 대해 늘 자부심을 가지고 계셨다. 관리들이 부임하거나 이임할 때마다, 가무작살이라는 마을의 할아버지 댁에 인사차 들리곤 하더라는 이야기를 자기 아버지에게 들었다며, 그때의 기억을 자주 말씀하셨다. 가무작살은 '원동'의 또 다른 이름인데 지금의 경남 사천시 축동면 배춘리 있었으나 지금은 사천 공군부대에 편입, 없어진 마을이다.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어느덧 13년. 이제야 나는 어머니의 유품—주로 책이나 묵주 같은 가톨릭 신앙 도구—을 담은 보자기를 풀어 그 안에 있던 낡은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여다보았다. 예전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고, 큰 글자 정도는 읽을 수 있었지만 작은 글자들은 알아보지 못해 깊이 살펴보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치 암호 해독하듯 돋보기를 들고 하나하나 글자를 읽어 보았다.
勅命(칙명)
金商浣(김상완) 陞正三品(승정 3품; 즉 정 3품 승진)
通政大夫者(통정대부자)
光武 六年 九月 二十五日(광무 6년; 즉 1902년 9월 25일)
大皇帝(대황제)
陛下入(폐하입)
耆社時士庶年八十人覃(기사시사서년 팔십 인 담; 즉 기사에 입소한 사서 중 팔십 세 인물에게)
恩加資事奉(은가자사봉; 즉 은혜로 자급을 더하여 봉함)
勅(칙)
풀어보니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칙명, 광무 6년 즉 1902년 9월 25일, 대황제 폐하께서 기사(耆社, 耆老所)에 드신 때에, 백성(士庶)으로서 나이가 여든에 이른 이, 즉 김상완에게 가자의 은전을 내려 정 3품 통정대부자 벼슬을 내리노라.”
士庶(사서): 사대부와 서인(서민)을 통칭하는 말.
通政大夫(통정대부): 조선 시대 문관의 정 3품 상계 품계. 현재 기준으로 보면 차관급 또는 1급 공무원 수준.
加資(가자): 정 3품 이상의 품계를 올리는 일, 또는 그 품계를 의미함.
耆老所(기로소): 70세 이상의 고위 문관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 왕은 60세 이상, 문관은 정 2품 이상이면서 70세가 넘어야 입소할 수 있었다.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를 장려하려는 제도였다. 기로소는 1909년에 폐지되었다.
이 칙명을 받은 김상완(金商浣)은 어머니의 친할아버지, 즉 나에게는 증조 외할아버지이시다. 당시 고종 황제께서 본인이 기로소에 입소하신 것을 기념하며 여든을 넘긴 인물들에게 통정대부 품계를 하사한 것이라고 한다.
사실 나에게 ‘고종 황제’나 ‘대한제국 시대’는 멀게 느껴지는 역사였지만, 이 한 장의 종이를 통해 그 시대가 내 삶과도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예전에는 이 벼슬을 실제로 지낸 줄 알았지만, 이번에 자세히 살펴보니 그렇다기보다는 팔순까지 장수하신 것을 기려 명예직 성격의 칙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내 얕은 역사 지식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다.
아무튼, 동네에서 한약방을 운영하시고 후에 경도(京都)와 진주 중앙시장에서 포목상을 하셨다는 자기 아버지, 그러니까 내게는 외할아버지에게서 한학과 글을 배우셨다는 점, 그리고 자기 할아버지, 내게는 증조외할아버지가 ‘통정대부자 칙명’을 받은 분이라는 사실에 대해, 어머니께서 무의식 중에도 큰 자긍심을 품고 계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자긍심이 어머니의 삶을 조용히, 그러나 굳건하게 지탱해 주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