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깻묵 물거름통

110210

by 로댄힐

깻묵 포대, 내가 들어봐서 알지만 무거워도 보통 무거운 게 아니다. 그 밤 따라 우리 라인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무거운 포대를, 그것도 평소보다 더 꽉 채운 두 포대를 7층 우리 집까지 어깨에 메고 올라왔다고 한다.


동네 시장 기름집의 안주인, 바깥주인. 고맙고 또 고맙다. 서로 가져가려고 한다는 깻묵을 매번 잊지 않고 챙겨준 지가 벌써 여러 해다. 교회 집사인 안주인과 전직 공무원 출신이라는 바깥주인 이 두 분은 손에서 나오는 참기름만큼이나 윤이 난다.


서재에 앉아 있는데 편이 나오라고 손짓한다. 맹추위는 가셨다지만 베란다 공기는 아직 차다. 큰 비닐봉지를 벌려 잡으라고 한다. 무게를 줄이려고 무거운 깻묵 포대를 나누어 담아 놓고, 냄새를 막으려고 봉지를 씌우려는 거였다. 덕분에 훨씬 가볍게 들어 운반할 수 있게 됐다. 차 안에도 냄새가 덜 배게 될 것이다.


편의 팔목 가느다란데, 요새 더욱 목, 어깨, 팔다리를 주무르던데. 미안하고 고맙다.


깻묵을 싣고 다니니 차에는 늘 그 냄새가 흔적으로 남는다. 빨리 빼는 게 하나의 과제다. 승용차지만 내게 오면 화물차가 된다. 내려갈 때도, 올라올 때도 뒷자리와 트렁크는 늘 짐의 자리다.



깻묵 두 포대를 싣고 내려왔다. 설 대목 그 바쁜 와중에도 모아두었다가 주문한 참기름병들과 함께 가져다주신 깻묵이다.


내려오자마자 깻묵 물거름통부터 퇴비장 뒤쪽으로 옮겼다. 여기에 깻묵을 담아 액비를 만들 참이다. 한여름을 겪고 겨우 다시 쌓은 퇴비장 블록담, 어설픈 내 손으로 쌓았으니 다가오는 장마철에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통이 담을 지탱하는 역할도 조금은 하게 하려 한다. 오묘한 뜻이다.

110210.JPG

겨울 햇빛이 유난히 깊게 드는 자리라 그런지, 물거름통을 옮겨 놓고 나니 마음도 더 따뜻해지고 보는 눈도 즐겁다. 올해 같은 추위에 양지바른 햇빛은 그 자체로 은총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비뚤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