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110202
땅이 꽁꽁 얼어붙었다. 매년 이맘때면 삽을 대지 못한 적이 없었고, 삽날이 들어가지 않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삽은커녕 괭이조차 땅을 긁어내지 못했다. 지난겨울 무리한 삽질과 곡괭이질, 도끼질로 왼팔을 혹사한 뒤라 조심하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막상 괭이를 들어 땅에 대보니 애초에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단단히 얼어붙어 있었다. 결국 벽돌을 반듯하게 놓는 일도 포기하고, 비뚤비뚤한 줄을 이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우선은 ‘이 정도라도’라는 마음이었다.
벽돌을 줄로 놓아 그려보고 싶은 그림은 기하학적 구도의 정원, 혹은 느슨하게 풀어진 만다라 같은 형태였다. 하지만 지금 출발선에 놓인 이 삐뚤삐뚤한 선을 보면 그리 될 리 만무하다.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머릿속에서만큼은 그런 정원을 그려본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자기 앞의 생’이라 하고, ‘제멋에 사는 게 인생’이라 하지 않는가. 나 역시 여러 조언과 시선을 받으며 여기까지 왔지만, 결국은 내 방식대로 살아본 셈이다. 누군가 이 모습을 보고 “저건 또 무슨 짓인가?” 하고 말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기하학적 그림을 그리면서도, 현실에서는 그와는 영 다른 줄을 이어가는 것, 그게 지금의 나다. 그렇게 생각하며 벽돌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지금은 비뚤지만, 언젠가는 선이 바르게 잡힐 것이다. 겨울이 지나 얼었던 땅이 풀리면 바닥을 고르게 다지고 벽돌도 다시 맞춰 놓을 참이다. 이런 작업을 몇 해만 더 반복하면 줄들이 제 모양을 찾고, 칸칸이 나뉜 자리마다 뭘 심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자체로 기하학적 정원이 되지 않겠는가.
형제봉 너머로 비치는 햇빛도 요즘은 머무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 동지가 지나면서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고, 입춘이 지나면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겨울엔 떠오르는 해가 반갑고, 여름엔 지는 해가 반갑다. 해가 서산에 걸렸다가 쉽사리 넘어가지 않고 잠시 머뭇거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봄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어 반갑기 그지없다.
이 겨울엔 산기슭에서 맞는 밤에도 유난히 별을 보지 못했다. 별자리 관찰과 공부를 마음에 담아두기만 하고 자꾸 뒤로 미루었다. 밤이면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 밖으로 나설 틈이 잘 나지 않았다.
요즘은 색소폰 연습 위에 낭송이 하나 더 늘었다. 마이크를 들고 내가 읽고, 내가 듣는다. 읽으며 듣는 그 맛이 묘하게 새롭다. 한밤에 시 한 줄, 산문 한 문장을 읽다 보면, 낮에 놓았던 그 삐뚤빼뚤한 벽돌 줄이 자꾸 떠오른다. 고르지 못한 겨울 땅 위에 올려놓은 그 벽돌들처럼, 나의 하루도 그런 불균형 속에서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