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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

110403

by 로댄힐

#1

하동읍에서 구례로 이어지는 섬진강 길, 오른편으로 핸들을 꺾으면 악양 초입이다. 펼쳐진 평사리 들판과 멀리 아스라한 회남재, 소시루봉이 언제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그러나 어제는 달랐다. 핸들을 꺾는 순간 낮게 떠 있는 헬리콥터들, 귀를 울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말 그대로 난리판이었다. 정동리 면 소재지 아래 평사리 쪽, 악양천 보에서 물을 길어 나르기 위해 고도를 낮춘 헬리콥터들이 만들어 낸 소란이었다.


산불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오른편 칠선봉 하늘을 보니 연기가 짙게 덮여 있었다. 큰 불이었다. 운전 중인데도 가슴이 쿵쿵 뛰었다. 늘 평온하던 마음에 금이 간 것이다.


면 소재지를 지나 부계 정미소에 이르자 길 양편으로 줄지어 선 차량들 때문에 통과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산불을 끄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차, 경찰, 소방차들이 뒤엉켜 혼잡했다.


교무회의가 늦게 끝나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경. 올라가자마자 어둠이 깔렸고, 헬리콥터의 굉음도 멎었다. 길뫼재에서 바라보니 해 뜨는 골짜기 아래쪽 칠선봉이 시뻘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밤 11시쯤 다시 나가 보니 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혹시 내가 머무는 곳 뒷산으로 번지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거리가 있어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잠자리에 들었다. 불은 이쪽 악양에서 저쪽 논골 쪽으로 건너가는 듯했다.


새벽에 나와 보니 여전히 불길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여명이 걷히자마자 헬리콥터들이 다시 날아왔고, 정오 무렵이 되자 불이 잡히는 듯했다. 그리고 결국 진화되었다. 늦은 오후, 숙진암 바위 너머 칠선봉을 보니 멀리라서 그런지 불탄 흔적은 보이지 않고 늘 그 자리의 산처럼 의연했다.

110403.JPG 좌측 산봉우리가 바로 불난리를 겪은 칠선봉

하루 밤낮 산불 난리를 겪은 셈이다.


#2

길뫼재 앞과 뒤, 옆을 온통 매화가 뒤덮고 있다. 남서쪽만 예외다. 대부분 내가 이곳과 인연을 맺은 뒤 심어진 나무들인데, 지금은 만개해 절정이다. 말 그대로 꽃 난리다.


특히 숙진암 바위는 활짝 핀 매화에 둘러싸여 있었다. 동네 이름도 동매(東梅)인데, 마을 뒤편 이곳은 내가 온 뒤 비로소 이름값을 하는 매원(梅園)이 되었다. 진짜 꽃 난리는 벌들이 웅성거려야 하는데, 매화에는 벌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난리는 난리지만 조금은 조용한 난리다.


그래도 내가 도착했을 때 범이와 호비는 여느 때처럼 시끄럽게 난리를 쳤다.


#3

맞은편의 ‘염소 영감님’을 이제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더는 염소를 키우지 않는다. 얼마 전까진 닭을 키우더니 이제 그것도 그만두었다. 닭이 있을 때는 새벽마다 들리던 수탉 소리가 더 신선했는데 말이다.


아무튼 나는 여전히 그분을 염소 영감님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그분은 나무를 참 잘도 벤다. 다른 과수나무를 심거나 고사리를 키우기 위해 개간하는 일이지만, 옆에서 보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무가 서 있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새삼 바라보니 위쪽 산비탈이 훤히 트였다.


그 경계 지점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붉은 천을 사이사이에 걸어둔 듯했다. 알고 보니 활짝 핀 진달래였다. 소나무 사이에 서 있는 진달래들이 꽃송이를 이기지 못해 앞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게다.


숲 속에서 진달래들이 서로 잘났다고 난리를 치는 중이었다.


난리, 이 난리 셋은 결국 모두 삶의 결을 이루는 소란일 뿐이었다. 산불의 거친 불길도, 매화가 터뜨린 고요한 향연도, 산비탈을 채운 진달래의 분분한 기세도 제각각의 방식으로 계절을 알리고 사람을 깨운다. 자연이 치는 난리는 두렵고도 아름답고, 소란스럽고도 따뜻하다. 난리 가운데서 나는 이 땅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새삼 확인한다.


세 가지 난리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결국 모두 자연이 삶에 건네는 물음이었다. 불길은 존재의 유한함을, 매화는 피어남의 필연을, 진달래는 생동의 의지를 일깨웠다. 소란은 곧 질서의 또 다른 형태였고, 혼란은 생성의 문턱에 놓인 숨결이었다. 그 난리들 속에서 나는 자연이 끊임없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순환의 진실을 본다. 그리고 그 순환 한가운데에서 인간 역시 작은 흔들림으로 존재를 확인하며, 살아 있음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난리는 곧 삶의 다른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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