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아래, 잔디 위 110319
“나뭇가지로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집, 벌들이 잉잉거리는 곳, 홍방울새 아득히 나르는 곳.”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에서 따온 이 구절은, 봄 초입 우리 밭에 다시 잉잉거리는 소리가 가득 찰 때면 자연스레 떠오른다.
올봄에도 벌들이 매화 주변으로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잉잉거리는 소리는 여기저기서 들리지만, 가을 메밀밭처럼 밭 전체가 울릴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래도 이 소리는 지금까지 이 매화 곁에서 들어본 벌 소리 중 가장 크고, 여럿이 내는 소리가 모여 은근한 웅성거림이 된다. 꽃이 많지 않은데도 벌의 수가 부쩍 늘어난 걸 보니, 우리 밭의 매화나무가 이제 제법 자랐다는 뜻이겠다.
올해는 꽃도 작년보다 훨씬 많이 달렸다. 과감히 가지를 쳐낸 탓에 남은 가지 수는 적지만, 그 적은 가지마다 피어난 꽃은 오히려 더 단아하고 단단하다. 매화는 원래 고목의 두터운 가지 끝에 몇 송이 달렸을 때 더 매화답다고 했던가. 몇 해를 지나며 바라보는 마음도 조금씩 변해, 드문드문 핀 꽃이 오히려 기품 있게 느껴진다. 홀로 날아다니는 벌 소리가 모여 잔잔한 울림을 만드는 것도 참 정겹다.
저기 아래 숙진암 앞의 매화 그늘에서는 편이 봄나물을 캐고 있다. 몸을 낮추고 땅 냄새를 직접 들이마시며 새순을 하나씩 골라 담는 모습은 오래된 일상의 한 장면이다. 매화 향이 가볍게 흩날리고, 벌들이 그 향을 따라 움직이는 사이에서, 편의 손길은 겨울을 밀어내고 봄을 당겨온다.
그런데 나는, 길뫼재 잔디 마당에서 전혀 다른 봄맞이 고생을 사서 하고 있다.
나는 요즈음 새로 시작한 공부, 즉 작은 공을 막대기로 때리는 일에 매달려 있다. 부산의 근무하는 대학 근처 실내 골프 연습장에서 프로에게 교습을 받고 있지만 워낙 늦게 시작한 탓인지 몸이 영 말을 듣지 않는다. 스윙을 한 번 제대로 해 보려 하면 팔이며 허리며 다리가 서로 제멋대로 꿈틀거려, 연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파김치가 되어 쓰러지기 일쑤다. 요즘은 잘 때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깊이 잠든다. 공이 작다고 얕봤던 게 오히려 큰 오산이었다.
그래도 후배 교수의 오래된 권고—정년 전에 막대기 잡는 법과 때리는 법 정도는 익혀 두라던 그 마지막 충고—가 결국 나를 움직였다. 막대기와 작은 공을 손에 쥔 지도 이제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가끔 아주 우연처럼 공이 빨랫줄처럼 곧게 뻗을 때면 그 기분이 참 좋다. 그 단 한 번의 시원한 타구가 다시 연습장으로, 다시 잔디마당으로 나를 부른다.
부산의 반듯한 인조 매트에서 배운 자세는 산기슭의 투박한 잔디 위에 올라오면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여기서는 작은 실수 하나도 흙과 잔디가 바로 알려준다. 하지만 그 정직함 덕분인지 프로의 조언이 몸에 더 깊숙이 스며드는 듯하다. 멀리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스윙할 때면 “이게 진짜 내 스윙이구나” 하는 생각이 은근히 들기도 한다.
아래에서는 아내가 흙 속 새순을 캐고, 위에서는 내가 잔디 위에서 공을 친다. 매화의 잉잉거리는 벌 소리와 스윙에 실린 바람 소리가 산기슭의 봄빛 안에서 느슨하게 이어진다.
벽돌 줄을 다시 바라본다. 아직은 굽고 흔들리지만, 손을 보고 또 본다면 언젠가는 공이 빨랫줄처럼 뻗어 나가는 그 선처럼 시원하게 곧아질 것이다. 봄나물의 초록과 매화의 희끗한 꽃, 공이 그리는 하얀 궤도까지, 이 봄은 매일 아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제 모습을 펼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