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장의 타임라인> 11월 29일
오후의 비스름한 햇살이 초겨울 낙동강 물결에 떨어져 부서지고 다리 건너 '안동병원'은 지방 도시에서는 눈에 띌법한 제법 웅장한 모습으로 강변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어두운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지하에 위치한 영안실로 향했습니다. 아버님은 돌연사였습니다. 아침에 난방을 살피시다가 그냥 이유도 모른 체 유명을 달리하셨다고 합니다. 후배의 안경 너머 짠 눈물로 절여진 눈가는 퉁퉁 부어 있었고 분향하는 동안 울리는 미망인의 곡 소리는 가슴에서 울리는 흐느낌이 진하게 전해졌습니다.
"어머~~! 이리 좀 와 봐."
안방 창문 너머에 산기슭에 온통 노랗게 물든 개나리 밭을 보고 어머니는 놀라서 탄성을 내뱉었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구석진 봉화산 근처, 중화동 경사길을 조금 오르다 보면 20년 넘게 달동네 사글세 전세를 전전긍긍하다가 어렵게 마련한 다세대 주택 4층의 빌라입니다. 너무 좋아서 매일같이 쓸고 닦고 하던 그 집에서 이사를 하고 처음으로 맞이한 봄 손님. 8남매의 막내로 자라신 60대 중반의 소녀 어머니는 감동을 받았겠지요. 췌장에서 콧속을 통해 배출되는 얇은 비닐 관과 주머니를 차고 병원에서 퇴원한 어느 날의 기억입니다.
아침에 출근하다 보면 때때로 만나게 되는 유치원 버스. 추월을 하려 하다가도 이내 물끄러미 꼬맹이들 탑승을 보면서 기다리곤 합니다. 새싹, 희망 그리고 미래.... 노란색이 주는 희망의 메시지가 어느덧 잔인한 봄날의 슬픈 추억이 되었습니다. 노란 풍선의 노무현 대통령, 노란 종이배와 리본의 세월호... 그리고 13년 전 중화동 산기슭의 노오란 그 개나리꽃...
금일 아침 사내 메일을 열어 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제 아버지와 사별한 그 친구가 이번에는 할머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84세의 노모는 그 슬픔과 충격에 아들이 떠난 그곳으로 단 하루 차이로.... 이런 것을 줄초상이라고 하는 것인가 봅니다. 어제 보고 왔는데 또 뭐라 위로를 해야 하나?
'그곳은 이 세상과 다르게 아주 행복한 것일 것 같아. <넘사벽>이 있어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감히 넘으려 하지 않지... 세월은 간사하게 다시는 아물지 못할 것 같은 슬픔을 조금씩 치료한단다. 납득이 되지 않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만 불쌍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위안이 될까?'
논리도 철학도 없는 글을 위로랍시고 후배의 카톡에 입력했습니다.
예순이 넘은 자식을 먼저 보내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신 경북 안동의 노모의 마음, 그리고 갓 17세의 생기 발랄한 소년과 소녀들을 심연에 묻어버린 세월호의 부모님 마음이야 다르지 않겠지요. 경북 안동의 급작스러운 아버님, 할머님과의 이별은 순리에 맞게 <넘사벽>을 넘어서 자식들의 행복한 미래를 응원해 주시겠지라는 희망을 가져 보지만, 진도 앞 검은 바다에 떠도는 304개의 노란 종이배는 아직도 그들이 왜 구조되지 못했는지, 혹시나 고의로 침몰을 유도한 것이 아닌지? 진실을 모르는 채 넘실대는 파도에 아직도 떠밀려 다니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7시간은 관심 없습니다. 그녀가 청와대 집무실에 있었어도 도움을 될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객실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는지는 그 이유는 반드시 설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반드시...
금주도 광화문에는 또다시 촛불의 물결이 넘실거리겠지요? 304개의 그 슬픈 종이배는 이제 300만 개의 노란 촛불이 되어 광화문 광장에 그 빛을 다시 발할 것입니다. 이 촛불은 이제는 더 이상 노무현의 풍선처럼, 팽목항 빼곡히 나부끼는 리본처럼, 그리고 그리운 어머니의 노란 개나리꽃 색깔처럼 더 이상 서글픈 색이 아닌 것 같습니다. 병아리들이 탑승하는 유치원 승합차처럼, 그리고 오래된 오크나무에 가득히 묶여 있는 노란 손수건처럼, 광화문의 그 촛불 바다는 희망과 밝은 미래를 밝히는 모든 시민들의 염원을 상징하는 색으로 우리의 마음에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