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돈을 쓸 줄만 알았지 모을 줄을 몰랐다. 학생 시절 알바비는 놀고먹는데 쓰는 돈이었고, 졸업 후 취업을 하고 나면 좀 다를 줄 알았는데 그만큼 씀씀이도 같이 커져서, 입금되는 즉시 이곳저곳으로 빠져나가려는 월급을 많이 놓쳐버리고 일부만 간신히 붙잡아 두는 정도였다. 월급이 끊긴 후에도, 마음은 긴축을 다짐하는데 돈 쓰는 손은 몇 달간 그새 익숙해져 버린 소비습관을 금방 고치지 못해 조금이나마 모았던 돈도 내 예상보다는 빠르게 바닥을 드러냈다.
수입이 없는 와중에 남은 돈으로 집세와 생활비, 마치 신용카드처럼 썼던 핸드폰비, 식비를 감당하는 건 두 달이 한계였다.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급한 마음에 다시 구한 알바 수당은 생활비에 분명 큰 도움이 되었지만, 당연하게도 극적인 결과를 만들어 줄 만큼의 액수는 아니었다. 사실 퇴사할 때 그만뒀다는 걸 집에도 최대한 늦게 알리려 했는데 얼마 못가 이렇게 될 거면서 무슨 배짱으로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이제야 우습다.
짧았던 완전한 경제적 독립은 싱겁게 막을 내렸고, 월세를 부모님께 부탁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다시 종속된 삶을 살아야 했다. 이젠 아직 학생 신분이라는 얄팍한 핑계도 없는 나는 내 하루를 만들고 지탱하는 그 돈이 정말 너무나도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무섭다.
나는 내 하루의 값을 하고 있는 건가. 내가, 당분간 책만 읽고 글만 쓰며 살아보고 싶다던 내 욕심이 과연 그만큼의 가치가 있긴 한가. 가끔은 글도 더럽게 안 써지는데, 갈수록 모자란 것들만 보이고 글 잘 쓰는 사람이 저 밖에 너무나 많던데, 내가 그 돈값을 할 수는 있는 건가. 적지 않은 그 돈을 부모 자식이란 지리한 관계만을 이유로 받아도 괜찮은 건가. 내 하루가, 삶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나. 엄마랑 아빠는 바쁘게 일하는데, 나한테만 돈 안 들어가면 노후는 걱정 없으니 너 앞가림만 하라던 말만으로도 너무 고마운데, 당장 그것도 못 해주는 내가 부담이진 않을까.
이제 돈 버니까 좀 깔끔한 집 살겠다며 1년 계약으로 꽤나 비싸게 구했던 월세가 관리비까지 64만 원. 핸드폰 요금 9만 원에 모바일 결제 비용을 추가해야 하고, 하루의 식비는 7천 원, 혹은 만 얼마, 어쩔 땐 0원. 책 읽거나 글 쓸 때 가는 집 앞 카페 아메리카노가 4천 원, 비엔나커피가 5천 원. 어쨌든 옷은 입고 살아야 하니 늘 그랬듯 SPA들만 애용해도 그것 역시 적지 않고, 가끔 친구 만날 일이 있으면 몇 만 원씩 깨지기도 한다. 잘 돌아다니지 않는 정적인 사람이라 교통비가 거의 없다시피 한 것, 관리비에 공과금이 포함되어서 전기세니 수도세니 하는 돈은 안 드는 것, 운 좋게 담배 냄새를 싫어해서 담뱃값은 들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내가 눕는 집, 먹는 밥, 입는 옷, 마시는 커피 모두에 지금은 부모님의 돈이, 그들의 노동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그것이 무거워 다시 제대로 취준을 할까, 구직을 해야 할까 자주 고민하고 그럴 때마다 잡코리아를 샅샅이 뒤지는데, 지난 직장을 박차고 나올 때 했던 처음의 다짐들이 아직은 나를 붙잡고, 생각했던 것들 조금은 더 해 보라고 나를 말린다.
그러니까 엄마. 조금만 더 해 볼게요. 나도 이게 잘하는 짓인지 사실 잘 모르겠는데, 욕심인 것도 알고 전공자도 아니면서 뭐든 써보겠다고 하는 게 참 허망한 생각일 수도 있는데, 진짜 당분간만 이렇게 살아 볼게요. 다른 애들처럼 용돈은 못 드릴망정 손 벌려야 하는 내 처지가 나도 안타까우니 그리 길진 않을 거예요.
처음의 다짐을 잊지 말자. 말이 좋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상이지 백수의 삶인지라 한동안 약간은 나태했던 것도 맞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치열하게 살아야 할 이유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내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서든, 미안함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든 열심히 해 봐야 할 일들이 있다.
며칠 내내 내리던 비가 그치고 오늘 서울의 하늘은 맑다. 오늘은 저기 남쪽 공주의 하늘도 맑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