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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기억력

by 김 경덕

기억력에 대하여


누구나 노년기에 접어들면 기억력이 감퇴되고 아울려 인지능력도 떨어진다. 노인들의 인지능력 저하에 대해서는 잠시 접어두고 기억력 감퇴와 대해서만 몇 가지 짚어 보자.

기억력은 '이전에 인지한 지식이나 인상, 경험들을 두뇌 속에 보관해 두었다가 스스로 끄집어내는 개인 각자의 능력'이다.


다른 나라의 통계이지만 우리나라에 적용해도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60대 이상의 10%가 기억력 감퇴로 인한 치매 초기 증상을 나타내고 80대에서는 무려 30%까지 상승한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추억할 일은 많아지지만 슬프게도 뇌는 점점 수축되고 덩달아 기억력도 퇴화된다.

특히 단기 기억 상실에 시달리게 된다.

우리 같은 70대 후반 노인들은 비교적 오랜 시간이 지난 과거 일은 잘 기억해 내지만 가까운 현재의 일이나 약속들은 자꾸만 깜빡거리고 잊어버린다.

노화 과정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다. 결코 병도 아니고 치매 증상도 더더욱 아니다.

오래전부터 이런 현상을 스스로 자각을 하고 아내에게 미리 당부를 해 두었다. 설령 내가 기억력으로 인해 실수를 하더라도 바로 비난하지 말고 서로가 서로를 돕고 먼저 챙겨주자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주고받은 대화의 대부분은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신도 한 물 갔어!'

'이빨 빠진 호랑이 같아!'

'털 빠진 여우가 누군데?'

결정적인 한방은

'당신, 치매 아니야?'라는

되물음이다.

농담같이 생각 없이 주고받은 말들이었지만 이런 투의 대화는 결정적으로 우리의 기억력을 퇴화시키는데 당당히 일조를 하였을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아내가 나에게 먼저 물어오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특히 대화 중 사람 이름이나 지명이 나올 때는 거의 절반은 도와주어야만 대화가 자연스레 연결된다. 치매환자는 여자가 남자보다 두 배 더

많다는데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간단하지만 쉽게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 보기로 했다. 외출할 때 신발을 신기 전에 먼저 물어본다.

'당신 스마트폰 챙겼어?'

그러면서 내 것도 확인한다.

기억력 유지에 상부상조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현장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다.

이런 유의 레퍼토리는 주변에 부지기수로 널려있다.


그럼 밖으로 눈을 돌려보자.

점차 친구를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어떤 친구들은 자꾸만 과거사를 들춰내어 추억하는데만 열중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게 되면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막을 수도 없다. 노인들은 기쁜 마음으로 지난날들을 추억할 수 있지만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면 자신도 모르게 미화하게 된다. 우리 때는 시작하여 나 때는으로 바뀌었다가 최종적으로는 나 때문에로 변질된다.

확대 변형되기도 한다.

기억력이 퇴화되면서 미래가 두려워지고 맞이하고 있는 오늘, 현재를 놓아 버리려고 한다. 노인들에게 나타내는 대표적인 부정적 증상이다.

늙은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나 때는, 왕년에는, 지난날에는 이란 말을 듣기 싫어한 젊은이들이 '라때'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작년 생일날 자식들 즉 아들과 딸이 바쁜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자기들 직장 근처에서 생일을 축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라 들뜬 기분에 라때를 너무 많이 사용해 버렸다. 파하고 일어서려는 순간 아들로부터 내가 사용한 시간 비율과 대화 내용의 무의미성을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의외였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부끄러운 일이었다.


노인들은 대화의 장이 마련되었을 때 친절하게 배려해 주고 경청해 주면 대화를 주도하거나 과거 일을 구구절절 반복하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노인들에게 과거를 회상하는 일과 추억을 끄집어내어 이야기하는 일에는 자기 훈련 즉 자기표현을 억제하는 훈련이 절실히 필요하다.


힘든 일이겠지만 자꾸만 과거사를 돌아보는 일에는 시간을 한정시키고 현재와 미래를 풍요롭게 하는 일에 더 많이 집중하도록 노력해야 될 것 같다.

무슨 일로 집중을 해야 하나?

노인들은 추억을 먹고살지만 젊은이들은 미래의 희망을 먹고 산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포기하지 말고 미래의 희망에 목줄을 메어보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각자가 결정할 몫이다.


2024,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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