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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닉 캐러웨이 Dec 30. 2018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고

'추석이란 무엇인가' 칼럼의 김영민 교수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

 나가기도 엄두가 안 나는 엄동설한의 가장 큰 행복이라면 따뜻한 방 보일러를 빵빵하게 켜두고 귤을 까먹으면서 밀렸던 만화책 보기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나는 조심스레 한 가지를 더 얹어 본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시점에 바로 김영민 교수님의 칼럼을 모아둔 신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를 펼쳐서 읽어 내려가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여러분이 글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와 '시간의 흙탕물 속에서'를 12월 31일에 읽을 수만 있다면, 지나간 한 해에 대한 아쉬움과 이루지 못한 계획의 씁쓸함은 눈 녹듯이 녹고, 다가오는 새해를 산뜻한 마음으로 부담 없이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 마침내 인정 단계. 시간의 몰매를 피할 방법은 없다. 그나마 바로 이 순간이 남아 있는 나날 중에서 가장 젊고 좋은 때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길거리 인파에 섞이지 말자. 재미없는 건배사를 남발하는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앉자. 새해의 운세, 새해의 사자성어 같은 신문 기사를 읽지 말자. 버려진 놀이공원 같은데 혼자 가지 말자. 대신 자신의 집에서 가장 따뜻한 곳을 찾아 고양이처럼 웅크리자, 오래전 지구를 호령했지만 지금은 화석으로만 남아 있는 거대 공룡을 생각하자. 탐사선이 보내온 무심한 우주 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영원을 추구하는 존재의 모순을 껴안고 애무하자...
 '시간의 흙탕물 속에서' 중에서   


 누구보다도 더 많이 벌고, 누구보다 더 오래 살기를 강요하는 속도 지향적인 사회에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삶은 공허하고 제 자리만 빙빙 돌게 된다. 높은 학점, 고시 합격, 대기업 입사와 같은 결과지향적인 공기로 가득하던 대학 생활에서 숨통을 틔워준 것은 김영민 교수님의 '동아시아 정치사상' 수업이었다. 단순한 정치 시스템, 의회 제도나 지난했던 정치사, 권력의 개념과 작동 원리 등에 대해서만 배워 왔던 학부생들에게 시민의 정치적 덕성 (political virtue)에 대해서 같이 고민해 볼 것을 촉구하였던 교수님의 강의가 그 어떤 강의보다 와 닿았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죽음 앞에 유한한 인간의 삶에 대한 연민을 갖출 때 비로소 한 명의 민주적 시민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잊지 않고자 했다. 졸업한지 오래 된 시점에서도 교수님의 한국일보 칼럼이 게재될 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읽어 왔다.   


 그래서 지난 추석 무렵에 '추석이란 무엇인가' 칼럼 글이 큰 인기를 모으며 주변 사람들의 큰 화두가 되었을 때 내심 기뻤다. 슈퍼스타K나 쇼미더 머니에 가족이나 친구가 나온 기쁨 못지 않게 내가 이런 분 밑에서 재밌는 강의를 듣고 공부했었다고! 라고 광화문 앞에서 춤이라고 추고 싶은 심정이랄까. 당연하게도 '추석이란 무엇인가' 이외에 '무신론자의 추석', '마지막 수업의 상상' 과 같이 졸업생 친구들끼리 링크를 공유해 가면서 즐겁게 읽은 글이 수록된 이 책이 다른 이들에게도 널리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요새 주변에 많이 추천하고 있는 문유석 판사의 책 '개인주의자 선언'과 더불어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간 분들이 긴장을 풀 수 있게 도와줄 것이며, 책임감을 지닌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벗이 있다면 상반기에 읽었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과 함께 김영민 교수님의 책이 좋은 처방전이 될 것이다. 


 행복의 계획은 실로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 주는가.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을 통해 의미하는 것은 대개 잠시의 쾌감에 가까운 것.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그러한 느낌은 오래 지속될 수 없기에, 새해의 계획으로는 적절치 않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 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나 역시도 새해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좌절하는 것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매너리즘이라는 나쁜 벗이 찾아올 때 소소한 일탈을 통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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