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보다 더 길고, 심연보다 더 어두웠을 24시간의 이야기
열아홉살 밖에 되지 않은 청년이 사고로 죽는다. 심장은 뛰고 있지만 몸을 지휘하는 두뇌는 완전히 기능을 정지한 '뇌사' 상태로 응급실에 들어온 열아홉살의 시몽 랭브르. 삶을 즐기고 모험을 좋아하며, 특히 서핑을 좋아했던 그는 이른 새벽 서핑을 하고 돌아오는 길, 함께 간 친구의 졸음 운전으로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다친 머리를 제외하고 멀쩡히 뛰는 심장. 사고 소식을 듣고 황급하게 달려온 부모에게 아들의 죽음은 믿기지 않는다. 저렇게 평온한 모습으로 심장이 뛰고 있는데!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사망 판정의 기준은 단순한 심정지가 아닌 뇌 기능의 완전한 정지로 그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여기에서 소설은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전개된다. 아들의 죽음을 머리로든 가슴으로든 받아들이기 힘든 순간에 의사들은 부모에게 아들의 장기로 여러 사람을 구할 수 있음을 알려야 한다. (뜬금 없지만 스포츠를 열렬히 좋아했다가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전신이 마비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미 비포 유'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가장 아름다울 때 지는 꽃은 사람을 먹먹하게 한다.)
소설은 휴머니즘에 대한 책이 아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 다른 이의 생으로 이어지는 단계, 24시간이라는 짧지만 강렬한 시간을 묵묵히 묘사해 나갈 따름이다. 젊은 청년은 안타깝게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장기를 기증할 수 있는 골든 아워란 시간은 초침 단위로 흘러 간다. 의사들은 자신의 책무를 묵묵히 해나갈 뿐이고, (나는 짐작도 하지 못할)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어려운 결정을 해야하는 부모의 찢어지는 마음을 소설은 독자의 가슴이 시리도록 엄청나게 긴 호흡의 문장으로, 어떤 부분은 스타카토에 가까운 단어의 나열로 묘사한다. 자신을 닮아서 어릴 때부터 모험을 추구했던 아들의 삶을 함께 했던 아버지는 이마를 찧으며 오열한다. "내가 서핑보드를 만들어 주지만 않았더라도! 가슴 속 불꽃을 조금이나마 늦게 불 붙게 했더라면 사고는 피할 수 있었을까..."
"... 그동안 그녀는 손등을 깨물며 그토록 사랑하는 목소리가, 오직 하나의 목소리만이 그럴 수 있듯이 친숙했던, 그러나 갑자기 낯설게 바뀐 그 목소리가 불러일으키는 공포로 얼어붙었다. 끔찍하도록 낯설 수밖에 없다. 그 목소리는 시몽이 겪은 사고가 일어난 적이 없었던 시공간에서, 이 텅 빈 카페로부터 몇 광년은 떨어진 흠결 없는 세계에서 솟아난 것이니까. 그건 이제 불협화음을 낳았다. 그 목소리는. 세상을 혼란에 빠트렸고 그녀의 뇌를 찢어발겼다. 그건 이전의 삶의 목소리였으니까. (……) 마리안은 손에 든 휴대폰을 꼭 쥔다. 말해 줘야 한다는 두려움. 숀의 목소리를 파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지금 그대로의 숀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기회가 그녀에게 더 이상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시몽이 비가역 코마 상태에 빠지기 이전의 그 사라진 시간을 체험할 기회가 다시는 결코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그 목소리의 시간 착오에 종지부를 찍고 그 목소리를 여기, 비극적 사건의 현재 속에 다시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녀는 자신이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p.101~102)"
청년의 심장을 다른 이의 생명으로 잇기 위해 장기 기증 코디네이터, 이식자의 담당 외과의, 간호사 등의 주변 인물들의 분주한 움직임, 그리고 그 뒤로 숨어있던 각자의 삶에 대한 권태와 잡념은 새로운 삶의 충동으로 이어진다. 이 소설이 훌륭한 점은 아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 뿐만 아니라, 청년의 심장이 이동하기까지 얽힌 이들의 심리에 대해서도 잘 묘사해 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먹먹했던 것은 열아홉살 청년이 남긴 심장에 담긴 이야기들. 어머니의 품 속에서 박동을 시작하여, 첫 사랑을 하며 말도 안 되는 심박수를 기록하고, 바다의 높은 파도와 싸우면서 강인해져 왔던 시몽 랭브르의 심장. 새삼 책을 덮으면서 내일 출근을 괴로워하다가 여전히 잘 뛰고 있는 나의 심장 위에 손을 얹어 보게 되는. 그리고 이 가슴을 뛰게 하는 사람들이 새롭게 그리워지던...
시몽의 심장은 수도권으로 이동했고, 그의 간과 폐는 지방의 또 다른 지역들에 도착했다. 그것들은 다른 육신들을 향해 질주했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고 나면 그녀의 아들의 단일성에서 살아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만의 특별한 기억과 이렇게 분산된 육체를 어떻게 결부시켜야 할까? 그의 존재, 이 세상에 비추어진 그의 모습, 그의 혼은 또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러한 질문들이 부글거리는 기포처럼 그녀 주위를 맴돈다. 그러다가 시몽의 얼굴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다. 말끔하고 온전하다. 그것은 나뉠 수 없는 것이다. 그게 그 아이다. (p.308~309)
마일리스 드 케랑갈 이라는 이 어려운 이름의 프랑스 여성 소설가의 이름을 한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다.
2017년에 빌 게이츠가 추천한 소설로 서점에 소개되었는데, 나 역시 정말로 주변 사람에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