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찌끄리기
소크라테스였던가 아리스토텔레스였던가.
동굴 이론을 기억하는가.
우리들의 삶은 마치 빛에 비친 그림자와도 같다고 했던 이론. 어떤 사람들이 동굴 속에 들어가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 속은 늘 어둠뿐이라 항상 횃불의 불에 의지해 살고 있다. 그 불에 비친 그림자가 이 현실세계이고 그 불을 들고 있는 실제의 손은 이데아이다.
난 아직도 그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 맘대로 해석한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면 내 해석은 이러하다.
예를 들면 아파트 엘리베이터 속에 다른 사람과 갇혀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의 어색함과 적막을 생각해보라. 나는 적어도 수초 동안 함께 탄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한다. 외모는 어떻고 입은 옷은 어떻고 성격은 어떨 것 같고. 마스크를 왜 안 썼을까 불만스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고 처음에 탑승할 때 늦게 도착해 버튼을 누른 사람을 태워주지 않고 차갑게 닫힘 버튼을 누른 어떤 한 사람에 대해서 냉혈한 같은 인간 같으니라고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옆 사람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심지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조차 기억 못 할 만큼 나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적도 많다. 하여간 저마다 이렇듯 다양한 생각과 마음에 사로잡혀 있고 때로는 상대방에게 뭐라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을 치솟아올라와 입술 언저리에 맴돌 때조차도 우리들은 너무나도 일상적인 미소와 표정과 자세로 굳어진 채 아무 말도 없이 상냥한 인사만을 건넨다.
이런 현상은 비단 낯선 이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친밀한 관계 - 직장동료들, 가족들, 친구들- 속에서 시간을 보낼 때 더 은밀하고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국 하나의 결론에 귀속된다. 속에 있는 말을 다하면 어떻게 관계가 유지가 되나. 솔직하다는 말속에는 난 언제든 당신을 어떤 방식으로 드 상처 줄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기도 하다는 걸 왜 당신만 모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때때로 너무나도 갑갑하고 숨이 막힘을 느낀다. 차를 운전하면서 지나치는 형형색색의 단풍나무들을 바라볼 때나 빛에 반사되어 비치는 강물이 마치 한 마리 비단잉어처럼 활기 있게 몸을 꿈틀거리며 나아가는 모습을 볼 때. 하늘에 구름이 물결치며 아름답게 하늘을 수놓은 모습을 볼 때면 난 차라리 횃불을 치워버리고 상대방의 얼굴을 매만지고 그의 몸통을 꽉 껴안고 놔주고 싶지가 않아지는 것이다. 자연은 이렇듯 자연스럽게 자신의 그림자가 아닌 실체를 드러내 보이고 있는데 왜 인간은 아니 나는 그렇질 못한 걸까. 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그림자만 보여주고 사람들도 나에게 그들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얼굴엔 온화한 미소와 사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내 실제 얼굴은 - 자동차 핸들을 잡고 아무도 없이 홀로 있을 때- 너무나도 차갑고 딱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