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단편
고등학교 수업 시간
교실 안에 우두커니 앉아
열 오른뺨을 하곤 창 밖으로 먼지 풀풀 올라오는 운동장을 바라보던 소녀가
회사로 가는 출근길 버스 안
깜빡 졸다 어느덧 들어선 빌딩 숲을 창밖으로 우두커니 바라보던 아가씨가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설거지를 하다 문득 눈이 쏟아지는 창밖을 바라본다.
십오 년쯤 후
길 떠난 자식의 소식이 궁금해 핸드폰만 들여다보던
중년 여성이 문득 고개 들어 창밖으로 쏟아지는 장맛비를 바라본다.
삼십 년쯤 후
이제는 머리가 아직 덜 마른 회벽처럼 희끗하게 새어버린 할머니가 앞마당의 낙엽을 쓸어내다
문득 우두커니 내려앉는 해을 바라본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가 다른가.
지금 창 밖에 떨어지는 저 눈은 그때의 눈과 같은가 다른가
한 인간의 삶이란 너무나도 짧다.
몸이 컸다가 쇠약해지고 머리카락 색이 바뀌고
허리가 구부정해지고 목소리가 조금 갈라질지언정
그 속에 몸담고 사는 이는 좀처럼 그 속도가 따라가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엔 우리 삶이 너무나도 찰나와 같다
창 밖에 눈이 펑펑 쏟아진다.
수십 년 동안 저 눈은 저리도 화가 날 만큼 한결같이 수줍게 곱게 하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왜 나는 그렇지 않은가
눈가에 잡힌 주름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내 곁을 지키던 이제는 떠나가버린 사람들을
밤하늘에서 빛나던 수많은 별들을 향해 손을 뻗어보곤 하던 순진한 소녀를
훨훨 날아다니며 누구보다 아름다운 미소를 띠고 날 바라보던 엄마의 미소를
어쩜 나는 이리도 쉽게 망각하고 말았나.
날 맑은 봄날 버스를 타고 가다
창문을 열어 이마를 때리는 시원한 봄바람을 만끽하던
아직은 어린 티 폴폴 나던 14살짜리 여자애가 그 애가 바로 나인데
그 애와 나는 대여섯 걸음 정도 밖엔 떨어지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덧 나는 흰머리가 슬그머니 고개를 쳐드는 40대를 향해 가고 있다.
눈 앞의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나면 나의 아름다운 엄마가 그리했듯 집을 치우고 쌀을 안치고 국을 끓이겠지.
눈 깜빡하고 나면 난 나이가 들겠고 그 사이 날 사랑해주던 나이 들었던 이들은 사라지고
내가 사랑하는 나이 어린 이들은 나 없는 다른 곳으로 떠나겠지.
눈이 내린다. 눈이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