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민서, 돼지저금통 왕국으로 떨어지다

by 연습생

민서는 열 살, 뽀글거리는 파마머리에 하얀 피부를 가진 활발한 아이야. 네 컷 만화도 잘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노래를 스스로 만들어 부르는 걸 좋아하는 상상력 풍부한 소녀야. 성격도 좋아서 반에서 인기도 있었지. 하지만 그런 민서에게도 부족한 점이 하나 있었어. 바로 돈을 받으면 참지 못하고 다 써버리는 습관이었어.


“와! 돈이다!~~~”


엄마가 용돈을 주시거나 세뱃돈을 받으면 민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인형 뽑기 기계 앞에 서 있거나 편의점에서 과자를 집어 들고 있었어. 한 번도 돈을 모아본 적이 없었지. 그저 당장 갖고 싶은 걸 사기 바빴어.


민서의 책상 위에는 통통이라는 이름의 돼지저금통이 있었어. 민서가 학교에 입학하던 날 엄마가 선물해 주신 거였어. 앞으론 용돈을 줄 테니 쓰기만 하지 말고 저축도 한번 해보라며 주신 거였지. 그때부터 통통이는 민서의 책상 한쪽 귀퉁이에 늘 있었지만 민서가 통통이에게 동전을 넣는 일은 없었어. 엄마가 때때로 텅 빈 통통이를 보며 잔소리를 하셨지만 민서에겐 들리지 않았지.


학교에서 돌아온 민서는 웬일로 통통이가 눈에 띄었어. 그래서 말을 걸었지.


“미안, 통통 아. 오늘도 못 넣었네. 다음엔 꼭 넣을게.”


통통이는 겉모습은 일반 돼지저금통과 같았어. 반투명한 빨간 플라스틱 재질에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 등에는 동전을 넣기 위한 길고 좁은 구멍이 뚫려있고 눈에만 예쁘게 스티커로 처리되어 있었지. 아주 예쁜 눈이었어.


하지만 겉만 이럴 뿐, 사실 통통이에겐 비밀이 하나 있었지. 사실은 ‘돼지저금통 나라’에 살던 마법 저금통이라는 거였어!

돼지저금통 나라는 온갖 디자인의 돼지저금통들이 모여 사는 나라였어. 통통이처럼 빨간 돼지저금통도 있었지만 흰색, 핑크색

등 각기 다른 색과 모양, 크기의 돼지저금통들이 사는 곳이었지.

이곳의 돼지저금통들은 태어난 후 어른 돼지저금통으로 자라나면 인간세계로 보내졌어. 그리고 사람들이 동전을 하나 둘

넣어줄 때마다 그 동전에 담긴 인간들의 마음에서 마법에너지를 얻어 살아가는 거였어.


시계가 열 시를 가리키는 어두운 밤, 민서는 늘 그렇듯 자기 방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어. 보름달이 잡힐 듯 커다랗게 떠있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지.

침대 바로 옆에 붙어있는 책상 한 귀퉁이에 통통이가 있었어. 얌전해서 자고 있는 듯 보였지만 실은 아니었지. 너무 배가 고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이런 날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왔지.


“하아… 배고파…. 대체 민서는 언제쯤 동전을 넣어주려나…”

통통이는 혼자 작게 한숨을 쉬었어.


몇 시간쯤 지났을까. 보름달도 자러 간 아주 깊은 밤 극심한 배고픔에 못 이긴 통통이는 결심을 했어.


“더는 못 참겠어… 마법 에너지도 다 떨어졌고… 고향에 다녀오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나겠어.”


통통이는 민서 방의 작은 창문을 마법의 힘으로 간신히 열었어. 그리고 마지막 남은 마법을 쥐어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어.


“꾸리 꾸리 꿀꿀꿀.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리 꿀꿀꿀.”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바로 옆에서 자고 있던 민서가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온 바람에 살짝 깬 건지 잠결에 팔을 휘적거렸어. 그러더니 무심코 통통이와 손이 닿았지.


“어…어라? 민서야?! 저리 치워!! 안돼!!!! 큰일 난다고!!!!!”

하지만 이미 늦었어.

순식간에 통통이와 민서의 몸이 반짝이며 허공으로 떠올랐고,
둘은 소용돌이치는 창문 밖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어.


“꺄아아아악——!!!








‘콰광 쿵!!!’


눈부신 빛이 지나간 뒤, 두 사람은 분홍빛 안개로 가득한 낯선 마을 한복판에 떨어졌어. 바닥엔 황금 동전이 지천에 널려 반짝이고 하늘에선 지폐조각들이 하늘하늘 휘날리고 있었지.


‘아야야야!!..?!’

민서는 바닥에 부딪힌 엉덩이를 문지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어.

“응? 여… 여긴 어디지…?”

그때 바로 옆에서 똑같이 엉덩방아를 찧어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빨갛고 비쩍 마른 돼지저금통 하나가 보였어.



“누구.. 세요??”

민서는 조심스레 물었어.


낯선 돼지는 민서를 돌아보며 말했지.


“으으… 아야야….”

“난.. 통통이야. 네 돼지저금통…. 이렇게 내 첫인사를 하게 되네.” 통통이는 겸연쩍게 웃었어.

“네에?? 아니, 뭐?? 네가 통통이라고??”


민서는 너무 깜짝 놀라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어. 돼지저금통이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당황해서 잠시 몸이 굳은 민서를 지켜보던 통통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며 말했어.


“응. 네 저금통 통통이 맞아. 그리고 여긴… 내 고향이야. 돼지저금통 왕국.”

“돼지 저금통 왕국?? 그게 뭐야?”

“나는 사실 보통 저금통이 아니고 돼지저금통 왕국의 국민이야. 이곳은 마법의 세계, 인간세계의 사람들이 뿜는 에너지를 먹고사는 곳이야. 그중에서도 난 돈을 아끼고 저축하는 알뜰한 아이들의 마음을 먹고사는 마법 돼지저금통이지”.


“네가… 마법 돼지저금통이었다고…?”

“응. 그런데 네가 돈을 안 넣어줘서 너무 배고팠어. 이럴 때면 잠깐씩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와 에너지를 얻고 다시 돌아가곤 했지. 이번에도 에너지를 충전하러 오려다… 네 손이 내 몸과 닿는 바람에 함께 오게 된 거야…”


민서는 머리를 감싸 쥐었어.


“뭐어??! 그럼…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우리 엄마는, 아빠는??”

통통이는 민서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어.

“너희 엄마 아빠는 이곳에 안 계셔… 너만 나와 함께 이곳으로 오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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