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서와 통통이는 마을 외곽에 있는 작은 빈 집으로 안내받았어. 그곳은 집이라고 하기엔 창고에 가까울 만큼 허름한 곳이었지.
통통이는 바닥에 털썩 앉더니 힘없이 한숨을 쉬었어.
민서는 통통이 옆에 쪼그려 앉았어.
잠깐이지만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고 나자 통통이의 모습이 좀 더 눈에 들어왔어.
아까 보았던 경비대장이나 길가에서 보던 저금통들과는 달리 삐쩍 마른 볼 품 없는 모습이었어.
피부는 뼈에 들러붙어 쭈글쭈글했고, 배는 홀쭉했지. 불룩 튀어나온 핑크빛 코는 물기가 하나 없이 푸석푸석해 보였어.
“너… 진짜 오랫동안 굶었겠구나...”
통통이는 작게 끄덕였어.
“사실… 네가 동전을 한 번도 안 넣어줘서… 마법 에너지가 다 빠져버렸어.
지금 내 몸 안은 텅 비었어. 배도 고프고… 힘도 하나도 없어.”
민서는 가슴이 아파왔어.
그동안 그냥 장식품처럼 생각했던 통통이가, 이렇게까지 말라가고 있었다는 걸 몰랐던 거야.
그때, 문이 열리고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하얀색 도기 돼지저금통 하나가 경비대를 이끌고 들어왔어.
눈이 지혜롭게 반짝였고, 코 밑에 눈처럼 하얀 수염은 너무 길어서 바닥에 닿을 정도였어.
도기로 된 몸통은 햇빛을 받아 은은한 광채를 띠고 있었지.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풍채였어.
“마을 시장님이셔..”
통통이가 귓속말로 알려주었어.
“이런 누추한 곳으로 안내해서 미안하구나.
다른 저금통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찾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이곳 꿀꿀 시티의 시장 “세이브”라고 한다.
너희가 인간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왕께서 일러주셨다.”
그러더니 세이브는 자신의 배 쪽에 난 동전 꺼내는 구멍에서 무언가를 꺼내 민서 앞에 내려놓았어.
오래되어 보이는 낡은 가방과 황금색으로 빛나는 노트와 펜 하나였지.
“노트 첫 페이지를 펼쳐보거라.”
“…네”
민서는 쭈뼛쭈뼛 노트를 손으로 가져와 조심스럽게 펼쳐보았어.
거기엔 누군가 메모해 놓은 내용이 있었지.
“왕께서 친히 너희가 이룩해야 할 목표를 적어주셨다. 거기 보면 네가지 미션이 있을 것이다.
그걸 이뤄내야만 다시 너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민서는 그 말을 듣자마자 적힌 메모를 뚫어지게 쳐다보았어.
그리고 한 자 한 자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어.
§§ 인간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미션 §§
미션 1. 스스로 돈 벌어보기
미션 2. 저축해서 이자 얻기
미션 3.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금전적 도움주기(단, 준 돈보다 더 많이 돌려받아야 한다)
미션 4. 통통이를 가득 채울 것 (1000 피그니)
읽기를 마친 민서는 겁먹은 표정으로 통통이를 바라보았어.
통통이도 처음 겪는 이 상황에 겁을 먹긴 마찬가지였지.
그때 세이브 시장이 한마디를 덧붙였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이 모든 것은 한 달 내로 해내야만 한다.”
그러자 민서가 깜짝 놀라 되물었어
“네?!!... 그럼… 시간 내로 못 하면.. 전.. 어떻게 돼요?”
세이브는 조용히 눈을 감았어.
“그러면... 영영 이곳에 머물게 되겠지.”
순간, 민서의 머릿속이 새하얘졌어.
다시는 엄마 아빠를 못 볼 수도 있고, 학교에도 돌아가지 못할지도 몰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뽑기 간식도 영영 못 사 먹을지도 몰라..
민서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어.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어.
두 손이 새빨개지도록 주먹을 꽉 쥐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
'내가... 돈을 번다고? 난 한 번도 벌어본 적도 모아본 적도 없는데? 어떡하지? 엄마, 아빠, 보고 싶어요... 으앙 ㅠㅠ'
그때 통통이가 가만히 민서의 손을 잡았어. 그러곤 가만히 속삭였어.
"민서야, 내가 도와줄게. 힘들겠지만 같이 노력하면 채울 수 있을 거야."
"정말?? 내가 널 이렇게 힘들게 했는데…. 그래도 도와줄 거야?"
"그럼, 당연하지. 난 2년 전 너에게 갔을 때부터 너와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었는걸"
통통이의 말을 듣자 민서는 갑자기 마음이 희망으로 차오르기 시작하는 걸 느꼈어. 아직도 무섭고 이 세계가 낯설었지만 통통이가 옆에 있다는 게 엄청난 위로가 되는 것 같았지.
“좋아요. 해볼게요 시장님.”
세이브 시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서를 바라봤어.
“흠.. 좋다.
그렇다면.. 한 가지 조언을 해주마. 그 노트를 가계부로 활용하도록 해라. 앞으로 네가 벌고 모으고 쓴 모든 돈의 내용을 적는 거다. 돈은 잘 관리하지 않으면 손에 쥔 모래알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게 마련이지.”
세이브 시장은 아까처럼 배에서 황금색으로 빛나는 펜 하나를 민서에게 주며 말했어.
“너희가 미션들을 모두 성취해 내면 순간, 다시 인간세계로 돌아가는 문이 너희 앞에 열릴 것이다”
“고맙습니다 시장님.” 민서가 인사했어.
"민서야, 내가 꼭 널 집으로 보내줄게. 우리 함께 돌아가자”
그렇게 해서, 민서와 통통이의 모험이 시작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