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rfaitement imparfaite Sep 26. 2020

할머니의 작은 무화과 나무

점심으로 먹으려고 회사 근처 그릭요거트 집에 가서 주문을 하는데, 과일토핑으로 무화과를 선택할 수 있길래 냉큼 무화과를 추가해왔다. 뚜껑을 열어보니 이 큰 그릇에 꼴랑 세 조각이 들어있다. 무화과 1개를 3등분 한 것이다. 조금만 더 넣어주지 거, 싶다가 무화과 가격을 생각하고 그래 이 시국에  자영업자도 먹고살아야지....하고 만다.

 

최근 몇 년 사이, 무화과가 별안간 왜 이렇게 핫한 과일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예전엔 깜빠뉴 같은 빵 안에 들은 건무화과 정도를 제외하고는 무화과를 보는 게 흔한 일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왜인지 인스타며 브런치 여기저기서 무화과 레시피가 보이고 디저트 가게에서도 무화과를 얹은 타르트가 시즌 한정메뉴로 한 조각에 밥 한 끼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

요런 것...군침이 꿀꺽...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 아 있을 때 많이 먹을걸!!!!


내가 어릴 때 외갓집에서 살았을 때, 외할머니는 매일 뭐에 좋고 뭐에 좋다는 온갖 풀을 끓인 정체모를 물을 국그릇으로 마시게 했다. 젊은 시절 위가 안 좋아 오래 고생하신 탓인지 '어디에 좋다'는 건강 프로를 어찌나 맹신하시는지, 지금도 할머니 댁에 가면 온갖 뭐에 좋다는 말린 풀떼기, 당귀 등이 플라스틱 통에 담겨 방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당연히 다른 가족들은 할머니가 그런 물을 마시라고 주면 질색팔색을 하였고, 어린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리니 뭣도 모르고 받아먹으면서도 몇번 강렬한 트라우마(ex.맛있는 오렌지맛 젤리인 줄 알고 받아먹은 생 달걀 노른자)를 겪고 나니 할머니가 건네는 먹거리에는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습관을 길러왔는데, 그렇게 억지로 받아먹은 것 중 하나가 바로 무화과였던 것이다. 아이고. ㅠㅠ


할머니 댁 마당의 반은 텃밭이었는데, 그 4평 남짓한 텃밭에는 고추, 상추, 꽈리 등이 알차게도 심어져있었고 한 구석에는 무화과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수원 주택가의 손바닥만한 텃밭에서 무화과 나무가 어떻게 그렇게 크고 무성하게 자랐는지 궁금하다. 무화과는 보통 남쪽 지방에서 많이 자라던데, 묘목을 가져오셔서 그렇게 키워낸 것인지..?


아무튼 할머니는 매일 텃밭에 물을 주시고 나면 그 무화과 나무에서 잘 익은 무화과 한 알을 따서 밥숟가락으로 내게 손수 무화과를 떠먹이셨다. 어린 내게 물컹하고 달큰하며 미지근한 무화과는 맛있는 과일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매번 이게 뭐에 좋고 뭐에 좋대~하면서 입에 떠넣어주면 짐짓 오만상을 쓰고야 받아먹으며 씹기도 싫어 한입에 꿀꺽 넘기는, 이상하게 생긴 '할머니가 주는 그거'였던 것이다.


아 지금은 먹고싶어도 잘 못먹는 귀한 무화과를..무화과가 이렇게 비싼 줄 내가 그때 알았더라면!이렇게 맛있는 건줄 알았더라면! 심지어 이 귀한 걸 껍질 부분은 죽어도 안 먹겠다고 버리기까지 했다!!


지금도 할머니집 거실의 짙은 갈색 마룻바닥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 할머니가 열심히 퍼주시던 그 몽글몽글한 핑크색 과육이 밥숟가락에 얹혀 천천히 내 입으로 다가오는 장면이 슬로모션으로 눈에 선한데, 왜 이사를 가셨나요..


만약 지금 내가 그 집에 있었다면 그 나무의 무화과를 모조리 수확해서, 와인 한 병을 준비한 후, 큰 접시 위에 무화과 한 20개를 치즈와 함께 쌓아놓고, "이게 진정한 플렉스다!!"를 외치며 밥숟가락으로 한 입에 무화과 반개씩 떠먹는 호사를 누렸을 텐데!


나중에 내가 주택에 살 일이 생긴다면, 마당에 꼭 무화과 나무를 심을 테다. 그리고 이번 추석에 할머니댁에 가면 혹시 또 할머니가 '뭐에좋다는 뭐'를 주시면 군말없이 받아먹을 테다. 나중에 또 없어서 못 먹는다고 땅을 치고 후회할지 모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딸래미 마음은 다 똑같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