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측정이 아닌 판단의 집합이다. 어떤 명확한 근거로 측정했느냐보다 어떤 마음이나 생각으로 판단했느냐의 결과로 이뤄져 있다. 철저하게 주관적이다. 객관적으로 삶을 평가할 수 없다는 말은 곧 주관적인 삶에 대한 인정과 다르지 않다. 삶은 결코 평가대상이 될 수 없으며 누구의 삶보다 더 낫다, 혹은 부족하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는 이유이다. 철저하게 개인적이라는 측면에서 비교하지 않는 것이 행복의 법칙이라는 말도 그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봉준호 작가가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그의 소감이 그가 감독상을 받았다는 것만큼이나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 것이다"
그는 감격과 고마움의 인사로 자신이 영화 공부할 때부터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것이라며 마틴 스콜세지의 말을 언급했다. 마틴 스콜세지는 "영화는 왜 개인적이어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견해의 차이라고 소개하면서 영화의 관점이 명확하고 개인적일수록 더 창의적이라고 대답했는데 봉준호 감독이 그 말을 인용한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는 말은 다른 것들과의 비교를 통해 우위를 점하는 방식이 아닌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새어 나온 빛의 결정체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 것이다"
가능성의 영역이며 효율성과 경제성을 강조하는 시스템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게 만들고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들렸다. 어떤 것을 부합하기 위해 포장하는 것이 아닌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는 느낌이었다. 이것을 하면 유리하다, 어떤 점에서 이익을 가져온다는 논리를 경계하기에도 충분했다. 물론 마틴 스콜세지의 표현처럼 무엇보다 스스로 명확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있다.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해 길을 만들어간다는 마음자세도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는 다른 누군가를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처럼 편안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다.
개인의 열정, 바램, 희망을 충실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 날 보상처럼 선물이 주어지는 날이 올 것 같다. 봉준호 감독처럼. 물론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손해 볼 것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결국 판단은 개인의 몫이니까.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가지는 않는다. 타인이나 세상의 평가를 받기 위해 살아가지도 않는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누구도 아닌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나온 빛을 쫓는 삶이 최선의 삶이며,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 메시지가 느껴지는 말이다. 그런 마음에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나 그 말을 완벽한 문장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봉준호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나는 영화를 연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메시지가 앞으로 내가 걸어가는, 내가 만들어가는 길을 밝히는 멋진 등불이 되어줄 것 같다.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