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올 때만 해도 마음속으로 혼자 다짐했었다.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아니면 계절이 바뀔 때라도 정리를 해서 버릴 건 버리고 가볍게 살아야지'라고.
처음 몇 달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조금 그 마음이 유지되는 듯했다. 하지만 6월 말이면 일 년이 되는 상황에서는 크게 만족스럽지 않은 것 같다. 나중에 해야지, 꼭 필요할지도 모르잖아,라는 마음으로 조금씩 외면한 것들이 여기저기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어제 낮에는 신발장을 정리했다. 작년에 신었던 아이들의 작아진 신발도 그렇고, 내년이면 신지 못할 신발도 눈에 보였다. 모르는 척 미뤄놓고 싶은 마음을 애써 끌어모았다. 어떻게든 시작해야 다른 정리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에서였다. 조금 웃기지만, 아이들 옷도 그렇고 신발도 그렇고 정리를 하려고 하면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엉거주춤한 적이 많았다. 그러다가 방황한 마음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이에 옷도 그렇고, 신발도 그렇고 어느새 옷장이나 신발장으로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마치 추억을 버리는 것 같은 느낌에 합당한 이유를 찾는 일에 매번 어려움을 겪었다.
'이 옷도 내년에 맞을지 모르잖아'
'작아졌지만, 그래도 혹시 나중에...'
'이 신발을 진짜 좋아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다시 입어지겠지...'
어제는 처음부터 머릿속의 모드를 'simple'로 맞추고 시작했다. 기준도 몇 가지 정했었다. 아이들의 경우 작년에 신던 신발을 올해 맞지 않았으니, 올해 신었던 신발도 내년에 맞지 않을 것이다. 과감하게 '정리'하기. 몇 년째 잠들어 있는, 아니 결혼 전에 샀던 부츠나 구두 중에서 근래 1,2년 동안 한 번이라도 신었던 신발을 제외하고는 '안녕'하기. 혹시 나중에 신을 지도 모른다면서 신발장에 모셔놓은 큰 아이의 신발 중에서 닳은 신발은 버린다고 이야기하고 깔끔하게 '아웃'하기. 그렇게 기준을 정한 후, 재활용 가방을 곁에 두고 혼잣말을 하면서 정리를 시작했다.
"내년에 맞지 않겠지?"
"응. 맞지 않을 거야"
"결혼하고 1,2번 정도 신었나? 근래에 신은 적도 없는데, 안녕할까?"
"응. 안녕하자"
"좋아했던 신발인데 이렇게 닳았는데, 다시 신을 일이 있을까?"
"아니. 없을 거야"
미루었던 것에 비하면 신발장 정리는 금방 끝났다. 생각보다 신발장 정리가 일찍 끝나면서 다른 곳이 심사 대상으로 올라온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을까. 혼자 신발장을 열고 닫으면서 만족해했던 기억이 난다. 뭔가 근사한 일을 한 것 같은 착각과 함께 마음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내일은 이불장이다. 베개도 그렇고, 이불도 그렇고 어릴 때 사용하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것들, 손님용으로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용하고 있지 않는 것들, 내일은 이불과 베개, 너희들이다. 그때 어디선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거실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소리는 조금씩 작아졌다.
"후유, 큰일 날뻔했어"
"작년 1월, 결혼식에 안 따라나섰으면 나도 갈뻔했어"
"올해 유난히 외출이 많더니 결국은 갔네"
"새로운 주인 만나서 잘 지내겠지?"
"그렇겠지?"
"그럴 거야..."
"이제 좀 편안히 쉬어도 되겠지?"
"그러게... 모두 오늘 하루 고생 많았어"
"당분간은 괜찮겠지?..."
"아마도..."
"모두 살아남는다고 수고했어..."
by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