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맞은 모더나가 아직 정착을 못하고 몸속을 떠다니는 모양이다. 뭔가 우주적 차원의 신호는 아니지만 몸 안에서 내가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버겁기는 하지만 이 또한 살아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이레놀을 먹었다. 지금까지 내 돈으로 타이레놀을 사 먹은 적이 없다. 모더나가 강력하다는 소리에 백신을 맞은 후 8시간 간격으로 먹고 있다. 근육통처럼 약간의 통증이 있고, 어지럼증이 지속되는 것 같아 일단 먹어보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자꾸 잠이 쏟아진다. 정확하게 간격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약을 먹은 몇 시간 후부터 몸에 땀이 나면서 잠이 쏟아진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불필요한 반항 없이 낮잠을 잔다는 점이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1시간쯤 잔 것 같다.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개운하지 않았다. 타이레놀이 유랑 생활을 하는 동안 마음도 같이 방황하는 모양이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 미리 세워놓은 계획이 있어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쉽지 않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꾸 나를 들쑤셨다. 누군가와 얘기를 나눠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고, 그렇다고 다시 잠을 자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마무리해야지라고 생각했던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를 몸 쪽으로 끌어왔다. 그러고는 목적도, 목표도 없이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밀라논나. 그녀는 한국인 최초의 밀라노 패션 유학생으로 엄마이자 패션디자이너,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젊은 사람들의 롤 모델이 된 장명숙 선생님이다.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는 그녀가 살아오면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것을 기록으로 옮겨놓은 책이다. 또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 품위 있게, '나답게'를 실현하는 노년의 삶을 제안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간결하다. 봉사활동을 하며, 단순함을 실천하는 그녀의 일상이 조금씩 내 몸속으로 뭔가를 흘려보내는 느낌이 든다.
허리 고통을 줄이기 위해 시작한 걷기 운동, 유품이 아닌 징표가 되기를 바라고 전해주는 작은 선물, 매년 가을 시골집 마당에서 벼룩시장을 열어 비워내는 삶을 실천하는 모습에서 "걸림돌을 디딤돌로"로 삼아온 그녀의 철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강한 멘탈을 유지하며 살아온 그녀는 매 순간 부드럽지만 강한 어투로 반복한다.
"Live and let live"
"남이야 어떻게 살든 서로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거지"
단 하나뿐인 나. 단 한 번뿐인 나의 인생에게 이보다 더 예의를 갖출 수 있을까. 찬란하게 나이 들어가기를 선택한 그녀는 삶을 축제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매일이 설렌다는 그녀의 얘기를 들은 걸까.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았다는 말 때문일까. 그녀의 유연한 생각과 가벼운 움직임에 아까부터 마음이 술렁거린다.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