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누가 나를 위해 존재할까?
내가 나만을 위해 존재한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일까?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일까?
- 탈무드, <미슈나> 아보트 편
진보의 산물이 가득한 세상, 생산량과 수요량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다. 많은 부분에서 상황은 획기적인 발달을 이뤄냈고 대규모의 연구를 통해 중세와 그 이전의 시대를 구분해 내었고, 중세 이후와 현대의 삶을 구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어떤 경향으로, 무엇을 획득하고 포기했는지 서술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성적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근대인들은 아직도 불안하다"라는 에리히 프롬의 의견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수요 테마모임에서 함께 읽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탁월한 사상가로 불리는 에리히 프롬의 대표작으로, 인류가 자유를 책임지지 않는 과정을 소개하며 어떤 방식으로 권위주의에 의지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가'와 '무엇을 향한 자유인가?'라는 두 가지 질문을 동시에 받아들고 자유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자유의 발전과 과제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풍부하고 다양한 연구 자료를 활용하다 보니 보고서 같은 느낌이 강했고 일관성이 느껴진다고 해도 지루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막연하게 '자유'라고 언급했던 것에 대한 고찰의 시간이었으며 의존과 복종, 독자성과 개인성의 상관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유,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의 재발견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할 것 같다. 에리히 프롬이 전하고 싶었던 '개인의 지적, 감정적, 감각적 잠재력의 표현이라는 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까지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실체를 파악하는 데에는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싶다. 단순히 심리적인 문제가 아닌 인간적인, 사회학적인 요소가 힘을 발휘했으며 그런 요소들로 인해 권위를 추구하는 과정은 또 하나의 관점을 가지는 데 도움을 주었다. 고립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며, 자유 역시 이런 기본적인 욕구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리히 프롬은 개별화 또는 개체화를 강조하지는 않는다. 그의 생각은 '연대'에 닿아있다.
"개체화된 인간이 세계와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효하고 생산적인 해결책이 하나 있다. 모든 인간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사랑이나 일 같은 자발적인 활동을 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인간은 기본적인 관계를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으로 다시 세계와 결합한다. p. 54"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통해 에리히 프롬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간결하다. "~으로부터의 자유"는 이뤄냈지만 "~으로의 자유"는 여전히 획득하지 못했다는 인식의 발견이다. 거기에서 출발하여 사회적, 환경적 요건에 의해 '~으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하는 과정이 어려웠다고 해도 그것을 얻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고 강조한다. 다만 인류는 '~으로의 자유'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 이유를 다름 아닌 '불안'으로 이해했으며 극도의 불안이 자유가 아닌 '도피'를 이끌어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불안, 자유, 도피를 향한 에리히 프롬의 분석이 매력적이었다. 자발적인 활동을 통해 세계를 끌어안고 스스로 더 강해지고 단단해져야 한다는 표현도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으로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창의성을 발휘하여 개인의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발전을 도모하라는 마지막 메시지는 평소 나의 생각과 결을 같이 하는 부분이라 유[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의 제안 "~으로의 자유" 독 인상적이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어떤 이유로 현대 고전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는지 완벽하지는 않아도 조금은 알 것 같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