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면서 그 이야기들은 갈수록 환상적인 것으로 변했다.
그러다가 그것들은 하나의 게임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뜻밖의 해법을 찾아내게 하는 게임 말이다
-나무 중에서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만난 저 문장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가끔, '만약에' 혹은 '어쩌면'이라는 상상력이 발동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곤 했다. 기본적인 성향이 진지함이라 대부분의 소재가 진지함이 배경이었는데, 어찌 되었건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글을 쓰곤 했다. 어떤 것은 에세이의 초고가 되기도 했고, 어떤 것은 짧은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일까, <나무>의 첫 페이지에서 만난 '이야기는 갈수록 환상적인 것이 되었고, 문제를 제기하고 해법을 찾아내게 하는 게임이었다'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이다. 하지만 <나무>에 대해서는 전해 들은 것이 없었다. 그러니까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읽었다. 과학부 기자로 활동했던 이력 때문일까, 자유로운 상상력 때문일까, 입을 다물지 못하는 상황이나 예상에서 완전히 빗나간 결말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나의 상상력의 한계를 경험하는 동시에 상상력의 한계를 깨뜨리는 시간이었다. 몇 작품의 경우는 '아! 나도 이 생각 했었는데'라는 것도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거기에서 멈췄고,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몇십 미터를 더 나아갔다. 나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수준 차이가 그 지점에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내겐 너무 좋은 세상>에서는 결말에서의 반전이 매력적이었다.<바캉스>는 위트가 느껴지는 마무리가 좋았는 반면 <투명 피부>는 교훈적으로 끝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황혼의 반란>은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에 대해 대중적인 호기심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이야기를 전개한 것이 신선했고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을 읽을 때는 칼 세이건이 생각났다. 창백한 푸른 점, 그러니까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느낌을 갖게 했다고나 할까, 인간이 아닌 다른 어떤 존재가 되어 나를 포함한 인간을 바라보는 느낌을 갖게 했다. <암흑>에서는 '실명'이라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들이 겪고 있을 공포, 두려움으로 인해 가볍게 페이지를 넘기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생겨났다. <조종>의 경우는 <내게 너무 좋은 세상>의 번외 편 같은 느낌이 강했다. <달착지근한 전체주의>에서는 은근한 비판을, <그 주인에 그 사자>에서는 그 비판의 강도를 조금 더 공격적으로 전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가능성의 나무>은 이 책의 표제작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주제 의식과 상상력이 가장 많이 반영된 작품이었던 것 같다.
총 18 편의 단편이 실린 <나무>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기를 희망하고 있다. 조금만 각도를 다르게 바라보면 완전히 다른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상상하기를 제안한다. 그렇게 하면 <가능성의 나무>에서처럼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도식화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을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겠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사색하기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놓치고 있는 소중한 메시지를 발견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내게 너무 좋은 세상>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이여, 그대들에게 진정 영혼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극적이지 않은, 극단적이지 않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시간 속에서 뜨겁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속마음이 잘 드러난 문장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질문 때문일까, 나의 영혼은 잘 따라오고 있는지 안부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