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감각적이야'라는 느낌을 주는 글이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역시 감각적인 글이 좋은 글이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나오는데, 사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애매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왜냐하면 '어떤 글이 감각적인 글이에요?'라고 누군가 막상 물어오면, '이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두루뭉술하게 느껴질 수 있는 단어가 입안을 맴돌면서 몇 개의 문장을 만들기는 하겠지만 '감각적'이라는 단어가 추상적인 것은 사실이다.
"어떤 글이 감각적인 글이에요?"
막상 질문을 받았다고 가정하고 나니,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은 '상상력', 하나밖에 없다. 어디선가 상상력을 마법의 세계라고 표현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상상력은 현재의 공간이 아니라 타임머신을 타고 새로운 공간으로, 그러니까 책 속으로 이동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늦은 오후 햇살 속으로 몸을 옮겨 현장의 생동감을 직접 경험한다거나 냄새를 맡는다거나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벌리고 서 있는 기분을 갖게 한다. 이럴 때, 유사한 경험이 있으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약간의 차이가 두고 여러 층위의 시각, 촉각, 후각, 청각, 미각을 자극받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쑥 밀어 넣어 더욱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나는 이 지점, 그러니까 독자가 직접 달려들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거나 새로운 시도를 제안하거나 주인공에게 알은척을 하고 싶어 하는 지점을 '상상력의 클라이맥스'라고 정리한다. 행간 사이에 숨겨놓은 저자의 의도가 적중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예를 들어, 에세이 쓰기의 장점과 그동안의 경험을 공유하는 글을 쓰면서 '나도 글을 써보고 싶어'라는 마음을 부추기는 데 의도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럴 경우 글을 써 내려가는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은 진취적이고 열정적일 수밖에 없다. 온 힘을 다해 글을 쓰면서 느꼈던 미세한 감각의 변화는 물론, 세포 하나하나의 반응을 놓치지 않으려고 세심한 노력을 다할 것이다. 나아가 그 과정에서 삶의 태도와 관점에 변화가 생겨난 것을 표현하여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을 가지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숨겨진 의도이자, 궁극적으로 내가 도착하고 싶은 지점이기 때문이다.
글로 정리를 하고 나니, 감각적인 글이 쓰는 것이 수월해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단언코 아니다. 이 부분은 글쟁이로 살아가는 한, 글로 삶을 묘사하겠다고 마음먹은 한, 평생의 과제이다. 다만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뿐이다. 주변을 관찰하고 그 순간에 빠져들어 글로 정리를 해본다거나, 굉장히 추상적인 생각이나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두서없이 나열하면서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적절한 단어, 생동감 있는 단어를 찾아내기 위해 시간을 정해놓고 '읽기 학습(독서)'를 지속하고 있으며, 익숙한 단어를 낯선 단어로 바꾸는 시도를 계속 해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았을 때 문학, 소설 작품을 읽는 것이 큰 보탬이 되었던 것 같다.
from.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