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생활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랑, 따듯함이 저절로
전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사랑과 다정함조차 아플 때가 있다.
태어나 그것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에게는
『맡겨진 소녀』
『맡겨진 소녀』는 클레어 키건의 작품으로, 『이처럼 사소한 것들』보다 먼저 국내에 소개된 소설입니다. 분량은 98페이지의 『맡겨진 소녀』는 아이랜드 교과 과정에도 소개될 정도로 좋은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어김없이 ‘역시, 클레어 키건이구나!’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릴 만큼 단 하나의 단어도 가볍게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정밀한 문장,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 명확하면서 뜨거운 문장이 돋보였습니다. 한 편의 수채화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글을 읽었다기보다 영화를 본 것 같고, 영화라기 보다 단 한 장의 그림을 앞에두고 몇 시간 동안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p.69
『맡겨진 소녀』는 아이랜드의 시골을 배경으로 하여 어린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소녀의 집에는 곧 남동생이 태어날 상황이었고, 소녀는 일상을 쳇바퀴 돌아가듯 바쁘게 돌아가는 엄마와 아빠에게 돌봄, 사랑, 애정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잠시 늙은 사냥개를 따라갔다가 아들을 잃어버린 어느 친척 부부에게 잠시 맡겨집니다. 소녀는 자기 집과 다른 분위기, 다른 돌봄, 다른 관심, 다른 애정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소녀가 느끼는 감정을 클레어 키건이 고스란히 살려냈습니다. 마치 어느 친적 집에 맡겨진 것이 소녀가 아닌 ‘나’가 된 기분을 갖게 합니다.
“이상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란다.”
아저씨가 말한다.
“오늘 밤 너에게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지만,
에드나에게 나쁜 뜻은 없었어.
사람이 너무 좋거든, 에드나는.
남한테서 좋은 점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래서 가끔은 다른 사람을 믿으면서도
실망할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라지.
하지만 가끔은 실망하고.”
아저씨가 웃는다.
이상하고 슬픈 웃음소리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아저씨가 말한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오늘 밤은 모든 것이 이상하다.
-p.73
작가는 새롭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발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 작품이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거나 전개를 지켜보면서 낯설거나 새롭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놀랐던 것 같습니다. 이토록 평범한 이야기를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킨셀라 부부의 마음도 알 것 같고, 소녀 부모의 상황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반면 소녀의 시선, 불안, 감정은 완벽하게 이해하기보다는 나라면 어떠했을까, 나는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가졌을까 상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졌던 것 같습니다. 아마 이는 클레어 키건의 의도가 적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맡겨진 소녀』를 읽으면서 저의 유년 시절을 수시로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가끔 찾아왔던 슬픔, 불안의 감정도 우연을 가장해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생 전체를 설명한 것도 아닌데, 어쩌면 인생의 아주 작은 부분을 소녀의 시선을 통해 소개한 것인데, 인생에 대한 질문을 받은 기분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가?
소녀를 향해 따듯함을 애정을 쏟아붓던 친척 부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봄의 빛깔이 아니라 여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했습니다. 아주 가끔 억수같이 비가 퍼붓고, 습기를 잔뜩 머금은 날을 마주할 수도 있지만, 눈부시고 찬란하다는 단어는 봄이 아니라 여름에 더 어울리는 것 같았거든요.
from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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