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믿는 일은, 때로는 신을 의심하는 일과 닮아 있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은 바로 그 믿음과 의심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날, 신학도 민요섭이 살해된다. 사건을 맡은 형사 남경사는 이것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신념과 신에 대한 믿음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라는 직감을 한다. 그는 민요섭이 남긴 낡은 노트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한 인간의 신념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을 따라 읽어 내려간다.
그 노트는 신에 대한 고백이자, 동시에 신을 향한 도전장이었다. 민요섭의 글 속에는 예수를 시험하고, 유다를 부추기며, 신 위에 군림하려 한 인물 아하스 페르츠가 등장한다. 그는 신을 심판할 수 있는 ‘완벽한 신’을 꿈꾸며, 신보다 더 완전한 존재를 만들고자 한다. 곧, 인간이 신의 자리를 넘보는 순간이었다. 그랬다. 민요섭은 신을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깊이 의심했던 것이다. 그의 의심은 신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의 진실에 닿기 위한 절박한 탐구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끝에서 그는 냉정한 진실과 마주한다. 완벽한 신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랑과 용서라는 것을.
민요섭의 곁에는 그의 사상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던 조동팔이 있었다. 그는 민요섭의 말 한마디, 신념 하나에 전적으로 의지했다. 그러나 민요섭이 “완벽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향해 나아가자 조동팔은 그것을 배신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이 세운 신은 의심할 수 없는 진리였고, 그 진리를 의심하는 자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다. 결국 조동팔은 민요섭을 살해하고, 스스로도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은 스스로 신이 되려 했고, 바로 그 순간 그의 꿈은 무너졌다. 믿음의 순도가 높을수록, 그 믿음은 쉽게 광신으로 변한다. 이 소설이 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민요섭과 조동팔의 대립은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신을 향한 믿음과 부정, 이념과 신념, 절대와 상대의 대립까지. 이름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우리 삶 속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인간과 신의 역사는 어쩌면 ‘무엇을 믿을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질문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민요섭은 끝내 신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완벽한 신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의 신을 받아들였고, 그 신의 이름을 ‘사랑’과 ‘용서’로 불렀다. 그는 깨달았다. 신을 닮는다는 것은 신처럼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임을. 『사람의 아들』은 종교소설처럼 느껴지지만 그 속에서 인간의 본질, 신념의 구조, 그리고 구원의 조건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숨겨놓았다. 신이라는 상징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려는 기회를 삼기를 바란 것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신에 관한 이야기이자, 인간 자신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책을 덮는 순간, 나는 민요섭이 이렇게 묻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믿고 있는가?”
“당신의 세상에서 완벽한 신은 어떤 존재인가?”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살악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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