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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호 Jan 15. 2020

답변을 '잘' 암기한 취준생에게

차라리 말을 더듬는 게 더 진실해 보입니다.

최근 S식품을 지원하는 취준생과 두 번의 모의면접을 진행했습니다. 보통은 면접 일정이 임박해서 두 번 만날 시간이 없는데, 이 지원자는 시간 여유가 있었습니다. 물론, 시간이 남았어도 열의가 없었다면 다시 찾아오지 않았겠지요.


첫 면접에서는 답변이 막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전 같은 모의면접 후, 질문의 숨은 의도, 지원 직무와 자기 이해의 중요성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피드백했습니다. 아직 준비가 부족했지만 배우려는 자세나 진지함은 높이 평가할만했습니다.


두 번째 면접은 복장도 제대로 갖추고 한층 발전된 모습이었죠. 기본 질문뿐 아니라 미리 준비할 수 없는 심층 질문에 대해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답변이 술술 나왔습니다. 마치 모든 질문에 대한 정답을 다 외우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막힘없는 답변이 만족스러웠는지 자신 있는 표정이었지만, 면접관 입장에서는 뭔가 빠진 게 느껴졌습니다. 바로 이었습니다. 아무리 면접관이 기대하는 만점짜리 답변이라도 본인의 진짜 생각이 아니라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의 근거가 될 없습니다. 암기 과목에 답변을 다 적었다고 해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람의 지식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상사가 불법적인 지시를 한다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장기적으로 회사의 지속 경영을 위해서,
원칙적으로 불법은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지시를 내린 이유가 있을 것이므로,
그 이유를 알아보고 다른 해결책이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제 기준으로 흠잡을 데 없는 답변입니다. 하지만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아, 이건 아는 문제다'라는 식의 답변이었습니다. 이런 태도에서는 성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취업 면접은 암기과목이 아닙니다. 진지한 고민을 통해 나의 생각을 답변한다면 그렇게 막힘없이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이럴 땐 차라리 더듬거리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연습을 정말 많이 해서 더듬거리는 '연기'를 하는 것이 어색하다면 어떡해야 할까요? 연기에 자신이 없다면, 준비된 답변을 하기 전에 이렇게 시작해 보는 겁니다. 그 난처한 상황을 상상하면 더 좋겠죠.


제가 믿고 따라야 하는 상사가 그런 지시를 한다면 정말 난처할 거 같습니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회사의 지속 경영을 위해서...


면접관은 지원자의 진짜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 비수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지원자들도 그에 대비해 예상 답변을 숱하게 반복 연습하죠. 그러다 보니 준비가 완벽한 질문을 받으면 표정부터 밝아지고 서둘러 답변을 이어갑니다. 바로 암기한 답변이라는 걸 드러내는 순간이자, 면접관이 불합격을 결심하는 근거가 됩니다.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는데 불합격한 경험이 있다면, 혹시 내가 그런 태도는 아니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 기회에는 미리 준비한 질문이라도 너무 성급하게 반응하지 말고 이런 멘트를 써 보는 겁니다.


'실제 그런 상황에 닥친다면...'
굉장히 곤란할 거 같습니다만,
쉽게 판단하기에 쉽지 않겠습니다만,
정말 고민이 되는 상황이겠습니다만,

이런 시작 멘트로 답변을 정리할 시간도 벌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을 겁니다. 부디 지나친 자신감으로 탈락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적습니다.




P.S. 앞에서 말한 지원자는 최종 합격했습니다. 본인이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으니 마땅한 결과였죠. 다만 제가 해준 조언이 만 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뿌듯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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