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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호 Sep 12. 2021

카페 구빙담

주말 오전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곳

#구빙담 #케냐 #커피는잔이지

주말 오전이면 구빙담에 온다. 최근에는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토요일에 출근을 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을 구빙담에서 시간을 보낸다. 매주 빠지지 않는 게 어려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주말 오전에 이 루틴을 깰 만한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구빙담은 핸드드립 커피가 맛있는 카페다. 몇 년 전 이곳에서 핸드드립 수업을 들었다. 3시간씩 8회에 걸친 입문 수업이었다. 커피 맛이 다양한 변수에 따라, 심지어 커피 내리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원래 수업의 목표는 일정한 맛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드립 실력을 키우는 것이었지만, 뭐든 몸으로 배우는 것은 더딘 내가 그 경지에 오를 수는 없었다. 수업을 마무리할 무렵 내가 내린 결론은 '커피는 사 먹는 거다'였다. 어차피 나는 저녁에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이루는 예민하고 촌스러운 체질이라 집에서 커피를 내릴 일이 없다. 핸드드립 용품은 인테리어 소품이 된 지 오래되었다.


구빙담은 집에서 20분 정도 운전을 해야 하는 거리에 있다. 잠깐이 아쉬운 주말, 이동 시간이 아까울 수 있지만 그 시간을 아낀다고 해도 여기 있는 만큼 시간을 알차게 쓰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잘 안다. 집에는 나의 정신을 흩트릴 것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아침부터 서두르지는 않는다. 주말마저 그러고 싶지 않다. 아침 물멍도 좀 하고, 설거지도 해놓고 느긋하게 나선다. 그렇게 도착하면 보통 10시가 좀 넘는다. 간혹 11시가 다 돼서 도착할 때도 있다.

 

이곳에서 하는 것은 주로 독서나 유튜브에 올릴 영상 편집이다. 예전에는 주말에'도' 책을 읽었는데 요즘은 여기서 읽는 게 거의 전부이니, 책을 너무 안 읽는다. 다시 독서량을 늘려야 하는데 한 번 망가진 습관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유튜브에 올리는 영상은 일주일 동안 짬짬이 찍어 놓은 수조 영상이다. 처음 유튜브에 영상을 올릴 때는 나도 한 번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생각은 없었다. 유튜브는 영상 저장 공간으로 훌륭했다. 지금은 나름 정성껏 영상을 찍고 편집도 한다. 하지만 봐줄 만한 영상을 만든다는 게 감각과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구독자가 늘 정도로 멋진 영상은 아직 멀었다.


생각에 관한 생각


구빙담에 있는 핸드드립 종류는 브라질, 만델링, 케냐, 예가체프 그리고 구빙담 블렌딩이다. 나는 케냐를 제일 좋아한다. 그래도 매번 같은 커피를 먹을 수 없으니, 토요일은 주로 케냐를 먹고 일요일은 예가체프나 브라질을 선택한다. 만델링은 특유의 흙 맛(?)이 싫어서 선택하지 않는다. 만델링을 먹어 본 지 오래되었는데, 다시 맛보면 내 입맛이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커피맛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커피를 즐기는 나만의 방법은 있다. 우선, 처음 커피잔을 들어 올렸을 때 커피 향이 중요하다. 입을 대기 전에 충분히 향을 맡는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다는 것을 온몸에 알리는 의식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첫 모금은 조심스럽게 조금만 입을 적셔야 한다. 그래야 커피맛이 입 안에서 변하는 흐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커피가 식어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단순히 커피의 온도가 내려가서 이기도 하고, 커피잔이 비워지는 아쉬움 때문이기도 하다. 커피는 만드는 사람의 마음도 중요하지만, 마시는 사람의 기분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충만한 기분으로 주말을 만끽할 때 커피맛이 최고다. 맘이 편하지 않을 때는 같은 커피라도 그 맛을 모른다.


집 근처에 맛 좋은 카페가 없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이곳을 찾는 이유는 익숙함 때문이다. 커피맛도 그렇고 인테리어, 테이블과 의자, 좌석 배치가 이젠 너무 익숙하다. 특히 내가 어떤 커피를 어느 정도 진하기로 좋아하는지 기억해 주는 직원들 덕분에 더 편안하다.  



내 취향이 이상한지 모르지만, 나는 꽃무늬가 그려진 커피잔이 좋다. 특별한 대접을 받는 느낌이라서 일까? 아니면 단순한 기하학무늬가 있는 커피잔은 왠지 사무실에나 어울린다는 편견 때문일까? 주말 오전 혼자서 보내는 이 소중한 시간에는 화려한 커피잔이 어울린다.




지금 이 글도 구빙담에서 쓰고 있다. 구입해 놓은 책이 없어서 노트북만 들고 왔다. 구빙담 책꽂이에 있는 책을 골라볼 생각이었다. 책을 고르다가 박웅현의 '여덟단어'를 펼쳐 읽었다. 5강 현재, 개처럼 살자라는 부분을 읽다가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여덟단어'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자극을 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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