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그렇게 되는 건 아니더라고..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범생이였다.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했고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왔다. 그 덕분에 내 기준에서는 다소 과분한 대학교의 공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첫 학기는 멋모르고 들떠서 지냈지만, 전공 수업이 시작되니 상황이 완전히 변했다. 첫 전공 시험지를 받아 보자마자 깨달았다. ‘아, 이건 전혀 다른 세계구나.’
최소한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내 눈에 시험 문제가 그렇게 어려워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다고 시험 준비를 소홀히 한 것도 아니었다. 나름 한다고 했지만, 정답은커녕 시작도 할 수 없는 문제가 태반이었다. 어설프게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개념들이 막상 문제로 주어지면 어떻게 적용할지 막막했다. 동기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시험을 치러 냈고, 나는 간신히 학사경고를 면하는 성적을 받았다.
물론 나보다 더 못한 성적을 받는 친구들도 있었다. 술이나 당구 같은 데 빠져서, 애초에 공부에서 손을 뗀 경우였다. 하지만 그 친구들도 학사경고 후 정신을 차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성적을 회복했다. 문제는 나였다. 어느 정도 공부를 했는데도 결과는 처참했다.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다. 단지 학교 공부가 내 수준보다 너무 높다고 좌절할 뿐이었다. 그렇게 2학년을 마치고, 더 이상 성적을 망치기 전에 일단 군대에 가기로 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할 때쯤, 나는 두려웠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공부한다면 결국 똑같은 결과를 반복할 것이 뻔했다. 졸업이 어려워 보였다. 부모님께 4년 만에 졸업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더 철저하게, 끝까지 공부하는 것.
이전까지의 공부는 적당히 이해하는 수준이었다. 강의도 대충 듣고 대략적으로 내용을 파악한 후, 간신히 몇 개의 예제만 풀어보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수업 시간에 나온 개념을 100% 이해할 때까지 파고들었고, 문제를 보면 풀이 과정이 술술 떠오를 정도로 연습했다. 밤 11시에 도서관 문을 닫는다는 것을 그 무렵 처음 경험했다. 고3 때보다 더 열심히 했던 거 같다. 이렇게 공부했으면 S대 갔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러고 나니 변화가 일어났다.
그전까지는 시험지를 받아 들면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이제는 풀이 방법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공부를 많이 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공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어떤 문제들은 적당한 노력으로는 풀 수 없다는 것을. 세상에는 70% 이해했다고 70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100%를 넘어야 비로소 손을 댈 수 있는 문제들이 있었다.
그 이후, 공부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다.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단순히 운이 나쁘거나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대신, ‘내가 아직 산을 넘을 만큼 준비되지 않았구나’라며 각오를 다잡게 되었다.
어떤 일은 적당히 해서 해결될 수도 있지만, 어떤 일은 적당히 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 이 깨달음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를 지탱하는 중요한 원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