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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메밀꽃 필 무렵』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by 이진호

나는 고등학교 때 수학을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이 더 좋았다. 수학은 한 줄 한 줄 논리적으로 풀어가야 했고, 이해되지 않으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한번 알고 나면 그 내용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원리를 익히고 비슷한 문제를 여러 번 풀어보면 괜찮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반면 국어나 국사는 수학과 전혀 달랐다. 나에게는 맞지 않는 과목이었다. 국어는 어려운 문법 용어를 외워야 했고, 작가의 의도를 묻는 문제는 '그걸 나보고 어떻게 맞추라는 거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사는 시대별로 암기해야 할 내용이 끝없이 많았다.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내용을 단순 암기하는 것은 나와 맞지 않았다.


나에게 국어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다.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시니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장면은 동이가 허생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이 결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이야기의 핵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다 보니, 국어나 국사 같은 과목은 반복해서 읽고 외우는 수밖에 없었다. 수학처럼 원리를 이해하고 풀어나가는 과정은 내게 맞았지만, 단순 암기는 영 어려웠다.


같은 반에 나와 정반대의 능력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글을 읽고 이해가 빨랐고, 암기력도 대단했다. 시험을 앞둔 어느 날, 그 친구가 책장을 빠르게 넘기고 있었다. 뭐하는 건가 지켜보니, 마치 사진 찍듯 내용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험 결과도 역시 좋았다. 짧은 시간 공부하고도 좋은 점수를 받는 친구가 부러웠다.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 친구를 보며 사람마다 지능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국어나 국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였는데, 내게 가장 어려운 이 과목들이 1교시 시험이었다. 1교시를 망치면 나머지 시험을 볼 필요도 없이 시험장을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걱정이 컸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반복해서 문제를 풀고, 암기하고, 또 암기했다. 고3 여름방학 때 두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했고, 다행히 점수가 조금 올랐다.


내가 이렇게 문맥 파악 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의심할 여지없이 독서량 부족이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다. 책을 읽지 않으니 독해력이 늘어날 리가 없었고, 독해력이 부족하니 책을 더 멀리하게 됐다. 그야말로 악순환이었다. 사실 지금도 소설이나 수필을 읽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다.


30대 초반부터 책 읽는 습관을 갖게 되긴 했지만, 때때로 '어릴 때 독서에 재미를 붙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따라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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