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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둥이엄마 시화랑 Jul 15. 2019

자연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얼마 전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자주 찾았던 내 고향 강원도 철원에 있는 계곡에 들렀다.

 남편에게 여기만큼 시원하고 좋은 곳은 없을 거라고 한껏 자신감을 내비치며 일부러 찾아간 계곡이 더 이상 예전에 내가 알던 '그 계곡'이 아닌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린 시절 자주 가던 분식집이 사라진 것보다 더 큰 충격이었달까.


2015년


 내가 알던 그 계곡은 (~2015년) 깎아 세운 듯한 절벽에서 얼음장같이 차가운 폭포수가 콸콸 쏟아지고, 차가운 물은 계곡을 따라 등산로 입구까지 흘러 내려왔다. 입구에서부터 시원한 계곡물소리가 가장 먼저 반겨주는 곳이었다.


 여름이면 동네 주민들에게 쉼터가 되어주는 곳.

 삼삼오오 돗자리를 펴놓고 고스톱을 치던 아줌마, 아저씨들과 아빠. 그 옆에서 백숙을 끓이고 있던 엄마의 뒷모습, 벌에 쏘여 이마에 된장을 덕지덕지 바르고 차가운 계곡물속에서 입술이 퍼레지도록 튜브를 타고 놀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찾아간 계곡은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오프닝 음악 대신 뜨거운 여름 바람을 맞고 휘청거리는 나뭇잎 소리와 새소리만 구슬프게 흘렀다. 숲에서 듣는 바람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은 법인데 그날따라 구슬프게 들린 건 온전히 사라진 추억을 잃어버린 절망스러운 내 기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혹시나 발을 담글 수 있을 정도의 물웅덩이는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등산로를 따라 올라갔다. 하지만 너무 가물어 버린 탓에 계곡물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고, 이름 모를 풀들이 등산로를 모두 가로막고 있었다. 언제라도 뱀이 튀어나올 것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 귓가에 윙윙대는 벌 소리에 기겁을 하며 오른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헐레벌떡 입구로 내려왔다.




 자연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기억해내고 싶어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간다. 그래서인지 의식적으로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은 사진으로 남기고 기록하려 애쓴다. 뭘 이런 것까지 찍어. 뭘 그런 걸까지 적어라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어린 시절엔 온통 친구와 좋아하는 남자뿐이었으니 그때 찍었던 사진은 온통 '사람'사진뿐이다. 더 이상 돌려줄 수도 없는 '사람들의 사진'뿐.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그때의 거리, 풍경, 그 계곡의 모습을 많이 담아두고 싶다.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글로든.


 아래의 사진들은 지금껏 찍었던 수십만 장의 사진 중 고향의 풍경을 담은 몇 안 되는 사진들이다.

 아마도 14년 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에 찍은 사진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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