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수만 장의 사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 한때 필름이었고, 현상을 거쳐 제 손에 남은 것들입니다. 23년동안 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 파일까지 모두 헤아려본다면 어쩌면 수백만 장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향 집 마당에 놓여 있던 장독대, 뒷마당에 소복이 쌓인 눈, 학교에서 찍은 친구들의 얼굴과 선생님 사진, 길거리의 연탄과 오래된 우체통. 결혼 후 아이를 낳은 지금은 대부분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과 제가 읽은 책, 잠시 머물렀던 장소 정도.
계절이 바뀌는 모습과 무심히 지나가는 순간들, 제가 만났던 사물과 풍경을 저는 계속해서 사진으로 남겨왔습니다.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라져버릴 것들을 그대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열다섯 살 무렵, 저는 동네 감자탕집에서 서빙과 설거지를 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모은 30만 원으로 제 생애 처음으로 카메라를 인터넷으로 구입했습니다. 바로 로모 카메라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담한 선택이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던 제가 어렵게 모은 돈으로 카메라를 샀으니 말입니다.
로모 카메라는 원래 구소련에서 군사용으로 제작되었다가, 이후 우연히 서구로 알려지며 사진을 잘 찍고 싶었던 사람들보다, 자기 방식으로 찍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필름카메라입니다. 색감은 과장되고, 사진 가장자리는 자연스럽게 어두워지는 비네팅 효과가 있었습니다. 초점은 종종 어긋났고, 결과는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로모만의 매력이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태도, 순간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은 당시 젊은 창작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카메라를 알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시절 저는 엄마께서 삼촌에게 돈을 빌려 사주신 귀한 컴퓨터 앞에서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예술가, 디자이너, 사진작가, 음악가, 모델들의 개인 홈페이지를 찾아다녔고, 그들이 어떤 작업을 하고, 어떤 카메라를 쓰며, 어떤 음악을 듣는지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유독 자주 언급되던 카메라가 바로 로모였습니다.
저는 그 독특함과 아름다움에 자연스럽게 이끌렸고, 그렇게 제 첫 카메라를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로모 카메라는 오래 제 곁에 머물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생활비가 부족해 결국 다시 되팔아야 했습니다. 제게 값진 사진 경험을 안겨주었던 카메라를 손에서 놓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고, 동시에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2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선택은 마음 한편에 남아 종종 후회로 돌아옵니다.
그럼에도 사진은 제 삶에서 멀어지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영화 〈러브레터〉 속 주인공이 들고 다니던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매료되어 또 하나의 카메라를 샀고, 대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펜탁스 ME Super를 구매했습니다. 펜탁스 ME Super는 작고 단단한 수동 필름 카메라로, 조리개와 셔터를 직접 조절하며 사진의 기본을 배워야 했던 기종이었습니다. 자동에 기대지 않고, 빛을 읽는 감각을 몸으로 익히게 해주는 카메라였습니다. 사진 동호회에 가입해 여행을 갈 때마다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다녔고, 출사를 다니며 곳곳의 아름다움과 사람, 풍경을 담았습니다.
이사를 앞두고 서랍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사진들을 꺼내 정리하던 날, 로모 카메라로 찍었던 23년 전 사진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현상된 사진 속에는 제가 이미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얼굴과 풍경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사진들을 보는 순간,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습니다.
사진 속에는 특별한 사건도, 극적인 장면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 시절의 저는 주변을 오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빠르게 지나치지 않고, 한 번 더 멈춰 서서 자연을 들여다보고, 사물의 모양과 빛의 방향을 관찰하며,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고, 쉽게 감동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눈물은 그 사진들 때문이라기보다, 그 사진을 찍고 있던 나 자신을 다시 만났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을 천천히 바라보던 시선, 별것 아닌 장면에도 의미를 부여하던 마음, 그 시간을 허락하던 삶의 속도. 사진 속에는 그런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무엇을 얼마나 오래 바라보고 있을까요. 하루를 돌아보면 오래 바라본 기억보다 빠르게 지나쳐온 장면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화면 위로 스쳐 지나간 이미지들, 곧 잊혀질 얼굴과 풍경들뿐입니다. 멈출 수는 없지만, 이대로 계속 가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지금, 잃어버린 기억의 한 가운데 서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