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엄마가 자주 생각난다.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며 내가 서 있는 자리마다, 문득문득 엄마의 모습이 겹쳐진다.
일요일 아침 아홉 시, 안방 가득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이들은 일찍 일어나 조잘조잘 떠들며 안방과 거실을 오갔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코를 고는 아빠, 끙끙 앓고 있는 나를 번갈아 보던 아이들이 결국 외쳤다.
“엄마, 배고파요!”
나는 힘겹게 팔을 뻗어 남편을 흔들었다.
“여보… 나 너무 아파서 못 일어나겠어. 목도 아프고 열도 나는 것 같아.”
술기운이 덜 가신 남편은 내 이마에 손을 얹고서야 엄살이 아님을 깨닫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렇게 차려진 달걀볶음밥 덕분에 아이들은 아침을 해결했지만, 밥 한 숟갈도 넘기지 못한 우리는 다시 쓰러졌다. 눈을 뜨니 정오가 훌쩍 지나 있었다. 아침은 아빠가 차려냈지만, 점심은 결국 내가 차려야 했다. 냉장고를 열자 해놓은 반찬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서랍칸에서 오리고기를 꺼내 후라이팬에 올리며, 나지막이 혼잣말이 흘렀다.
“하, 밥하기 싫다.”
그 순간 엄마가 떠올랐다. 내 기억 속 엄마는 단 한 번도 밥상을 대충 차린 적이 없다. 외식도, 배달도 드물던 시절, 아빠와 나, 그리고 오빠의 식사 시간을 맞춰 세 끼를 어김없이 준비하셨다. 몸이 무겁고 서글픈 날, 밥 차리기조차 버거운 날이 분명 있었을 텐데, 왜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까.
오늘처럼 내가 아팠던 날이면, 엄마는 한 치도 내 곁을 떠나지 않으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다 나을 때까지 손으로 주물러주셨다. 이제는 아파도 나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해줄 사람도 없고, 어리광을 부릴 수도 없다. 아플 때일수록 더 간절히 엄마가 생각난다.
아이들이 갓난아기였을 땐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데 온 힘을 쏟다 보니, 엄마가 곁에서 얼마나 애써주고 계신지는 깊이 헤아릴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엄마가 시골로 돌아가시고 살림과 육아를 온전히 홀로 도맡게 되면서, 비로소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네 살이 되어 성격이 드러나며, 제법 말로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하면서도 또 다른 방식으로 엄마가 떠올랐다. 까탈스럽고, 관심받고 싶어 하고, 사고 싶은 것도 많고, 무엇보다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딸. 그런 아이를 보며 힘들고 화가 나다가도, 문득 깨닫는다.
‘우리 엄마, 나 같은 딸 키우시느라 정말 힘드셨겠구나.’
그리고 어느 날은, 내게서 엄마의 모습이 겹쳐졌다. 설거지로 차가워진 손을 이불 속에 넣어 따뜻하게 덥힌 뒤 막 일어난 내 뺨을 쓰다듬어주던 순간. 그 온기 속에서 나는 언제나 사랑을 느꼈다. 지금은 내가 아이들이 잠에서 깰 때 손바닥을 데워 아이의 뺨을 어루만진다. 아이의 얼굴 위로 엄마의 모습이 겹쳐질 때마다 마음 깊숙이 저릿하게 울린다.
나는 늘 엄마와 한 방에서 잠들었다. 엄마는 언제나 내 손을 꼭 잡고 주무셨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아이들과 잠들 때도 무심코 그들의 손을 꼭 잡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마음은 사랑이었고, 지켜내려는 다짐이었다. 그럴 때면 깨닫는다. 엄마도 같은 마음이셨으리라.
돌이켜보면, 살면서 엄마께 혼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모질게 굴고 퉁명스럽게 대했어도, 엄마는 화를 내지 않으셨다. 그저 묵묵히 감싸주셨다. 무한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나는 어쩜 이렇게 차갑고 냉정할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게 왜 이리 어려울까. 그래서일까, 내 딸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나처럼 쌀쌀맞아질까 두려워진다. 자기만 생각하며 엄마의 마음을 모른 체하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괜스레 찔리기도, 겁이 나기도 한다.
그 시절, 집안의 무게는 온전히 엄마의 몫이었다. 늘 바깥을 떠도는 아빠 대신, 엄마는 세 아이의 삶을 감당하셨다. 그 고단함을 나는 끝내 묻지 못한다. 그 질문을 꺼내는 순간, 엄마는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려야 하고, 나는 그 이야기를 눈물 없이 들을 자신이 없다. 무엇보다, 엄마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고 들어주고 치유해줄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오히려 더 외면하고 싶어진다. 엄마를 둘러싼 서글픈 시간을 차마 헤집어 꺼내지 못한 채, 다만 짐작할 뿐이다.
나는 오늘도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엄마를 떠올린다. 아프던 날의 손길, 식탁 위의 따뜻한 밥상, 잠든 내 손을 꼭 쥐어주던 그 밤들. 나를 지켜낸 수많은 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음을 늦게나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