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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빈 Jan 06. 2020

정치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계약을 할 때는 상대방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진보적 정치인은 기득권에 맞서 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에 더더욱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로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떠올라버리는 것이 슬프지만, 언젠가는 그러지 않을 날도 오리라 믿으면서.



많은 이들이 2009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 행렬 앞에서 오열하며 정치에 무관심했음을 자책하고, 그의 죽음을 한탄했다. 나도 지금의 내가 너무 미약하다는 사실에 가슴을 치며 울었다. 또한 이제  반성하고 자책하는 시민들이 밉기도 했다. 이미 늦은  아닌가, 운구차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손길들은 과연 떳떳한가 하는 원망이 서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로를 정해야 하는 당시 나이 스물 ,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무엇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받아낼 사람은 누구일까? 라는 질문 앞에 막연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10년,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만 같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 내고, 청와대 국민청원이 활성화 되는 것을 보니 정말 그런 것만 같았다. 그런데 회색지대가 존재했다. 정치는 관심 있지만 정치인은 싫다고 말하는 사람, 양쪽 진영 논리가 다 싫다는 사람, 정치, 법, 이런거 내 삶하고 아무 관련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정치를 하는 일은 죄악과도 같다, 짐승이 하는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깊은 정치혐오까지 말이다. 어떤 이해관계에 대해 협의하고 해결하기 위한 모든 행위가 정치적 행위이지만 '정치'라는 말을 일종의 욕설 내지 불순한 동기를 가진 행위라는 식으로 부정적 의미를 덧씌우는 일들이 아직도 비일비재하다.




하루는 운동하다가 관장님이랑 TV뉴스를 보고 있었다. 관장님이 국회에 대해 한숨을 쉬며 "맨~ 싸우기나 하고"라고 한탄하시니 옆에 같이 운동하던 한 청년이 말했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게 아니래요. 짐승들이나 하는거지 사람이 하는거 아니에요”

이런 직설적인 욕설은 오랜만에 들어서 약간 당황해서 수습할겸 "에이 그래도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누군가는 해야죠"라 말해봤지만... 관장님도 청년과 마찬가지 이야기를 하셨다. "중요하긴 뭐가 중요해. 나같은 사람은 법 없어도 정치 없어도 잘만 살아. 나랑 하등 아무 관련 없어."


그러나 정치는 결코 우리 삶과 괴리된 일도, 무작정 부정적인 일로 치부하고 멀리 해야 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가까이 붙어 있다. 결코 멀리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필요한 일이다.  우리가 물건을 살 때마다 내는 부가가치세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나 일하는 가게의 월세계약 연장과 관련된 일도, 일하는 환경의 안전비용 지출의 정도도, 사먹는 식재료의 방역상태도 모두 정치와 관련된 일이다.


삶의 각종 크기의 문제들을 해결해보고자 마음을 먹고 나서 싸우다보면 결국에는 그놈의 나랑 생전 관심 없었던, 정말 멀리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정치와 법이 떡하니 마지막에 마왕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법률개정운동으로 변화된다. 어떤 운동이 법개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운동이 여론을 등에 짊어지고 이제 무르익었으며, 운동의 막바지이자 새로운 문이 열렸다는 뜻이다. 고 김용균의 죽음과 같은 일을 막기 위해 산업안전법 개정이 이야기되고, 민식이 교통사고로 인해 도로교통법이 개정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 운동 막바지의 문지기이자 문을 열어야 하는 돌격대인 국회의원들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짐승들이 문을 지키고 있으면 우리는 어떻게 문을 열고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는가.




계약은 원칙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개나 고양이와 계약할 수 없고, 휴대전화와 계약할 수 없다. 상대방을 매번 “짐승”이라 칭하고 그 “짐승됨”을 용인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공동체를 가꿀 일꾼을 구할 수가 없다. 정치인이 짐승이 되는 순간 정치는 계약이 아니라 정글이 된다. 시민은 사나운 맹수에게 포위당한 먹잇감이 되고, 정치인은 요리조리 우리를 훑어보며 잡아먹을 생각만 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하지 마라"라는 말을 정치혐오를 정당화하는 말로 사용하곤 하는데 그렇게 사용하면 완전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노대통령이 "정치, 하지마라"라고 말하는 글의 마지막은 역설적이게도 우리 정치권에 대한 변화의 열망을 담은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시민들에게 정치인이 처한 어려운 현실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정치, 하지마라". 이 말은 제가 요즈음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말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하는 말입니다.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하여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중략)
저는 정치인을 위한 변명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치인을 위하여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정치가 좀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정치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먼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인의 처지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이 이야기를 합니다. 주인이 알아주지 않는 머슴들은 결코 훌륭한 일꾼이 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오연호,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206~208쪽에서 발췌


어떤 사람이 정치인이 되어야 하는가? 정치의 계약상대방이 나를 지지하는 시민들이라는 것을 이해함과 동시에 또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계약상대방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시민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막연한 구호로 선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민과 공감하며 지향을 이루기 위해 함께 역할분담을 하고, 이루어낸 일들에 대해 책임을 떠안는 사람 말이다. 


노대통령은 어떤 정치인에게 국민이 신뢰감을 가지려면 '정치판 흙탕물' 속에서 살아남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정치판이라는 이 흙탕물 속에 들어와서도 그래도 비교적 때가 덜 묻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이지 구정물 옆에 와보지도 않았던 사람을 어떻게 신뢰하겠습니까?" 라고 말하기도 했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치판에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중요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이 과정을 거친 사람은 '신뢰'라는 정치적 자산을 얻는다. 그리고 시민은 그 정치인과 계약하기를 원하게 될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인가는 정치판에서 중심을 잡고 때묻지 않는 사람,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중요한 요소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정치력'은 아마도 시민에 대한 공감능력과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상대방과의 협상능력에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변화를 호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제도를 바꿔나가는 실행력이 있는 사람. 또 한편으로는 정제된 논리와 실체가 존재하는 사실관계를 가지고 상대방과 협상해나가는 능력이 있는 '사람'말이다. 사람들이 현재의 정치인들이 짐승이라 말할 때는 공감능력의 부족을 느껴서 그런 것이고, 무능하다고 말할 때는 실행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는 거기에 더해서 정치인은 사람들이 '짐승'이라 비난할지라도, 그 진흙탕에서 돌을 맞을 지언정 정글 속 늪에 빠져있는 시민들을 수레에 태우고 끌어 당기고자 하는 열망과 강단이 있는 사람, 진흙탕을 버틸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충되는 이해 속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염원을 제도화 하기 위해 끊임없이 상대방과 토론하고자 하고 대립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 


사실 우리 삶의 작은 요소요소들을 해결하는 일에는 보수정당이라 하더라도 진보정당과 크게 대립하지 않는다. 소위 '민생법안'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 예산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한 것을 제외하면 대체로 무난하게 합의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진정 '민생'을 극적으로 향상하거나 공동체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는 크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검찰개혁, 법원개혁, 재벌개혁, 사학개혁, 그 외 우리 사회에 널리널리 퍼져있는 여러 악습들을 개선하는 문제들 앞에서 특히 그렇다. 사회의 구조를 바꾸어야 하는 제도개혁의 문제를 헤처나가는 정치인은 그저 선한 사람이라고 되는 일은 사실 아닌 것이다. 짐승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문제를 해결코자 이를 악물고 나아가는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한다. 

 

결국 이야기는 돌고 돌아서, 그래서 정치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요즘 각 당에서 인재영입을 하고 있다. 각 정당들은 정치인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이 사람들을 영입할까? 어떤 정치인이 각 정당의 대표적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인가를 살펴보면, 그 정당의 미래가 보일지도 모르겠다.




시민도 계약의 당사자다. 계약의 당사자가 된다는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어떤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할 것인가? 정치인은 어떠해야 하는가. 나는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내가 지지하는 그 정당의 그 정치인은 내가 꿈꾸는 세상을 함께 염원하는 사람인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에 대한 각자의 해답이 없다면, 호구잡혀 의무와 책임만 있을 뿐, 나의 권리주장은 허공으로 날아가버리고 말 것이다. 바야흐로 '짐승'이 포효하는 정치 앞에 먹잇감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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