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문장] 우주적

장이지 시

by 여기반짝






적, 의, 것, 들


'적'은 퇴고할 때, '의, 것, 들'과 함께 삭제를 고민해야 하는 접미사입니다.

하지만 우주와 결합한 '적'이 자아내는 감각은 더 신선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신비를 비문으로 표현한 의도에 위트도느껴집니다.


최근 본 연프에서 '와, 대박적이다'라고 치는 대사에 피식 웃은 적이 있어요. 그건 '적'의 의도적 오용을 알랭 드 보통의 소설 번역에서도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에요.(...바그너적인 깊이가 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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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에 부여하는 특별함을 '우주적'으로 칭한 표현이, '운명적'보다 비장하지 않아 좋아합니다. 요즘 가벼운 예술을 찾게 되어 더 그런 것 듯요. 제가 생각하는 가벼움은 뭐랄까, '경박과 무의미'보다는 '해탈과 무용함'이라는 의미와 가까워요. 또한 삶이 가볍기 위해선 중력을 거스를 줄 아는 내공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라 그렇기도 합니다.



천동설의 낭만, 지동설의 미학


밤하늘의 수많은 별과 사람의 관계를 연대라 칭하는 것은 시의 오래된 문법입니다. 소박한 빛을 내는 존재들이 어둠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표현을 하는 시인들은 어릴 때부터 분명 사랑받고 자란 사람일 거예요.


더구나 모든 천체가 나를 향한다는 것, 은하가 '그' 라는 점은 시의 표현에 따르면 안드로메다적인 발상이죠. 이렇게 별이 나를 중심으로 존재한다는 건 흡사 천동설 같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연애 감정은 이기적 속성을 띤다고 할 때, 천동설은 꽤나 낭만적인 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당신이 숲 저편으로 사라졌을 때. 이제 둘의 관계를 1인칭으로 볼 수 없는 사이라면, 3인칭으로만 서술할 수밖에 없죠. 몇 걸음 간격을 두고... 그렇게. 시인은 시선을 현실로 돌려, 쌓인 눈과 녹은 눈사람이 있는 땅을 봅니다. 그리고 별은 각자의 궤도를 유영하고 있다는 객관성으로 관계의 끝을 인식합니다.



그리고 엇갈리는 유성들


비과학을 과학이 대체하는 지점부터, 화자는 이별을 현실적으로 자각하는 것으로 보여요. 이별은 한순간에 들이닥치지 않습니다. 이별도 감정이 전제이므로 스펙트럼일 수밖에 없는 거죠. 헤어진 관계를 이성적으로 해석하려면 역시 3인칭 시점으로 서술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둘 사이의 관계가 천동설에서 지동설이 되어버린 지점이 타인이라는 결론입니다.


끝내 엇갈리는 궤도가 운명적임을 알면서도, 이별한 그에게 하루 종일 편지를 쓰는 마음은 어쩌면 이런 생각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주목받는 사랑이 아니어도, 낭만적이지 못해도 괜찮다는 마음.


천체가 일정한 궤도를 그릴 때 우주의 질서가 성립하는 것처럼, 음악에도 적당한 거리를 둘 때 생기는 화음이 있습니다. '도레'와 '미파'의 관계처럼 간격이 없는 음은 때로 소음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음악도 3인칭의 미학을 지니고 있죠.


별이 음계처럼 떠 있다.
연주가
밤을 앗아간다.

이훤, '어떤 음악은 소리 없이 연주되고'



멀리서 관측하는 마음도 가치 있습니다. 내가 세상의 중심에 살고 있다는 기분은 느끼지 못하더라도, 각자의 궤도를 충실히 걷는 별이 있어 우주는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공모전에 도전했다가 떨어진 자의 정신승리입니다.)



*시의 원문은 행바꿈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