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개막부터 논란이 많았다. 중국 내 소수민족을 표현한다며 한복을 입은 조선족이 등장하니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분도 상하고, ‘저런 몰지각한 놈들’이라는 감정 섞인 소리가 마음속에서 일기도 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 하는 말에 이해해 보고자 한 걸음 물러서 생각해보아도 몰 예의한 지각없는 행동이라는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집단지성의 끝은 어디인가, 경의를 표한다!
논란은 계속됐다. 가장 어이가 없던 것은 우리나라 쇼트트랙 선수인 황대헌과 이준서가 나란히 실격을 받은 장면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우리 선수들이 워낙 출중한 기량을 갖고 있었고, 같은 조에 다 중국 선수가 있었다. 랭킹 높고 유력 메달 후보였던 우리 선수들은 실격을 당했고 그 자리는 모두 중국 선수들이 채웠다. 결국 결승에 오른 중국 선수들은 이번에도 석연찮은 판정 끝에 금, 은메달을 모두 싹쓸이했다.
우리나라 해설진이긴 하지만 전문가들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의견이었고, 동일한 반응의 외신보도도 접하고 나니, 4년에 한 번 올림픽 때나 흥분하는 비전문가 관객의 입장에서야 그 부당함에 함께 분노하는 수밖에 달리 무엇을 할 도리가 없었다. 다시금 중립을 지키면서 짐짓 점잖은 체 흥분을 가라앉혀가며 영상을 수차례 돌려 보아도 납득이 안 되는 것은 여전했다.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중국의 편파 판정은 중국이라는 국가 자체에 대한 감정과 이미지까지 악화시켰다. 다른 대회에서는 넘어갔던 복장 규정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돼 결국 게임을 치르지 못하고 무더기 실격이 나왔다는 다른 종목의 이야기까지 전해졌고, 빙상 경기장의 빙질 관리 등도 도마에 올랐다.
언제나 개최국은 약간의 홈 어드밴티지를 봐온 것이 사실이다. 직접 경기를 펼칠 곳에서 연습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기 내적인 혜택도 있을 것이고, 불완전한 인간이 하는 경기다 보니 같은 조건이라면 개최국의 편을 들어주는 사례들도 자주 보아왔던 관행이다. 우리라고 88년 하계 올림픽이나 02년 한일월드컵, 18년 평창 올림픽에서 완전히 공명정대한 판결만이 있었고, 반사이익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겠나?
하지만 이번 쇼트트랙 논란은 기존의 관행보다 더욱 노골적이었다는 데서 그 정도가 심했다. 개최국인 중국 입장에서도 다급 했을 거라는 추정에 이르면 추정이 더 이상 추측이나 상상이 아니라 확신에 이르게 된다. 하계 올림픽만큼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가능성이 많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서 중국이 두각을 나타내는 종목은 제한적이었다. 그나마 쇼트트랙이 가장 중국에게 있어서는 기대할 수 있다 보니 더 무리하지 않았겠냐는 추정은 실제 발생한 사례와 부합하면서 그럴 듯 해진다.
게다가 중국이란 나라가 어디 스포츠를 제외하고 생각해도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나라였던가.
동북공정이라는 이름 하에 타국의 역사마저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몰염치한 행각은 지속되고 있고, 몽골이나 홍콩 등 소수민족이나 물리적 정서적 갈등을 빚고 있는 외교문제에서 언제 중국이 큰 땅덩이를 갖고 있는 국가의 관용을 보인 적이 있었나. 오히려 99냥 갖고 있는 갑부가 기어이 100냥을 채우고자 한 냥 갖고 있는 가난한 이의 전 재산을 홀랑 빼앗으려는 탐욕적인 모습으로만 일관하지 않았던가.
국가주의가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스포츠 게임에서 일부 편파판정이나 납득할 수 없는 조치에 사람들이 그저 오심이나 단순 실수로 넘어가지 않고 그 안에서 중국의 정체성을 찾고 있는 것에 대해서 중국은 실로 진지하게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반성조차 하지 않는다면 관중 수입도 부족한 올림픽에서 오심과 편파판정, 미숙한 진행으로 돈은 돈대로 쓰고 국가 이미지까지 되려 하락시킬지 모를 일이다. 물론 반성과 자정작용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인지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 먼저 켜지지만.
동계올림픽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것은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스포츠 게임에서의 어두운 단면으로 매번 대두되는 약물 복용 문제는 이번에도 불거졌다. 이번에는 그 시비가 터진 곳이 러시아였는데, 동계올림픽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인 선수가 약물을 복용했다는 이야기였다.
세계인이 소녀에게 느꼈을 감탄과 배신감, 그리고 측은함에 대한 복잡한 소회는 소녀의 눈물을 보며 다시금 심란케 되리라
러시아는 기실 초범이 아니라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직전에도 약물 파동으로 지난 도쿄 하계 올림픽도 국가 이름을 달지 못한 채, 러시아올림픽위원회라는 일종의 기구 형태로 참가하지 않았던가. 그 제재가 아직도 계속되어 동계 올림픽에서 동일한 형태로 참가해야 했던 국가에서 다시금 이런 일이 재발했다는 것은 해당 종목의 특정 선수나 코치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해당 국가의 사회적 가치와 인식에 대한 의구심까지 들게 만든다.
하필, 논란의 본원인 중국과 러시아는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다. 두 국가가 지향하는 이념의 유사성뿐 아니라 각 대륙별로 어마어마한 땅덩이를 갖고 있다는 점, 현재 주변국과의 외교정세가 순탄치 않다는 점, 내부적으로는 일인, 일당 장기 독재체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 등 다양한 점에서 두 나라의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 사회에서 몰두하는 가치를 추적해 보면 그 사회가 지향하고 추구하는 정신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다. 유사한 점이 많은 두 나라가 지향하는 가치가 더 이상 본질적으로는 빛을 발할 수 없고, 수단에 종속되어서만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닐지 그들은 생각해봐야 한다. 더불어 우리 사회 역시, 양국의 문제점을 바라보면서 목적과 가치가 이토록 쉽게 혼동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경계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과정이 어떻게 되든 결과만을 향해 몰두하며 경쟁하는 시스템은 존재를 가난하고 비루하게 만든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번 대회에 참여했던 국가대표 선수들 이후에 한국 쇼트트랙의 선수층은 훨씬 얇아져서 세대교체에 대한 어두운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세대교체를 성공하지 못한다면 예전만큼 종목 내 최강국으로 군림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접한다. 하지만 4년에 한 번 가슴팍이 쫄깃한 흥분의 경험을 더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쉽지만, 편파 판정이나 약물 등으로 결과에만 매몰되는 것보다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때로는 강자의 지위와 그렇지 못한 때를 즐길 수 있도록 받아들이는 것이 더 올림픽 정신에도 부합하고, 시절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생각해본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는 당위의 다짐도 함께.
소회와 설명은 생략한다
돌이켜보면 4년 전 평창 올림픽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은 은메달을 딴 이상화와 금메달리스트 고다이라 나오가 나란히 서로를 위로하고 축하하며 어깨를 기댄 채 빙판 위를 거닐던 모습이었다.
이번 올림픽도 아마도 내게 오랫동안 가장 기억에 남을 장면은 여자 3000m 계주에서 시상대에 오른 각국 청년들이 해맑게 웃으며 서로를 축하하고 사진을 찍던 모습일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잘하면 잘한 대로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이미 충분하다.
경기장을 수놓고 있는 선수들의 나이를 보면 어느새 필자보다 어려도 한참 어린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는 동생이라 하기도 민망할 나이차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