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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쿠나 Feb 22. 2021

팔이 저리다. 마음도 저리다.

타박타박 저녁 일기, 21년 2월의 어느 날.

오른쪽 견갑골이라고 해야 되나. 어깨가 이상하게 저려왔다. 

큰 맘먹고 시작한 PT로 무리를 해서인지, 아니면 그동안 제대로 자세를 잡지 못하다가 올바른 자세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고통인 건지, 혹은 그냥 세월의 흐름 속에 자연스레 나타난 증상인 건지. 

문제는 무엇이든 그럴듯하다는 점이다.


첫 번째 추정 원인, PT로 인한 과부하. 

나는 홀로 약 7년 여남은 세월을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7년이면 어림잡아도 2,500일 정도의 시간이다. 평소 잘하는 게 돈 낸 거에 본전을 뽑으려는 성실함 밖에 없다. 다만 본전을 뽑는 것의 측정방법이 보통 출석에 그친다는 점이 아쉽지만. 


돌이켜보면 비싼 등록금 내고 다녔던 학부시절도 그랬다. 수업을 빼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4년 동안 수업을 빼먹은 게 총 두 번인가, 세 번인가.. 그중 한 번은 졸업사진을 찍는 것 때문에 어쩔 수 없었으니 넉넉잡아 딱 두 번 땡땡이를 쳐봤다. 물론 성실한 출석에 비해 성적이 탁월하지는 않았다. 


헬스장도 마찬가지다. 비용이 크고 작은 건 중요치 않았다. 그냥 냈으니 다니는 거다. 30일 기준 평균 24회 정도는 간 거 같다. 그렇게 거의 7년의 세월을 다녔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나올 때 나오고 들어가야 할 때 들어간 조각 같은 몸은커녕, 그 누구도 성실히 운동을 했다고 볼 수 없는 몸이었다. 오히려 운동한다고 하면, 지인들이 흠칫 놀라기부터 했다. 


그럼에도 굳이 PT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PT를 받지 않은 이유를 늘어놓으면, 가장 큰 건 비용이었다. 채 한 시간이 되지도 않는 지도를 받으면서 5, 6만 원의 돈을 지불한다는 건 큰 부담이었다. 다만 비용만이라고 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제법 그럴듯한 이유라고 생각하고 너저분하게 늘어놓았던 변명은, '어릴 때는 숙제 안 해가서 기합 받고, 20대가 되어서는 나라에 헌신하라고 해서 기합 받고, 이제는 돈까지 내면서 기합 받아야겠냐'는 일갈 정도였다. 그런데 이 논리가 얼마나 부실하냐면 누가 무료로 알려주면 아마 좋다고 배웠을 것이다. 오히려 매일 혼자 명상의 시간처럼 자기와의 싸움을 한다는 변명이 조금 더 진실에 가까웠다. 


아무튼 다 변명이다. 결과만 따지고 보면, 7년 세월 동안 운동이 잘 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트레이너는 귀한 시간이 너무 아깝다면서 차근차근 자세부터 알려줬다. 빈 봉으로 하는 스퀏이 그리 힘든 것인지 몰랐다. 첫날 하체 운동을 하고 난 뒤, 휘청거리는 두 다리가 창피한 것보다 그저 헬스장 바닥에 널브러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어깨 운동은 더 심했겠지. 7년 세월 스퀏보다도 불성실했으니까. 충분히 과부하가 걸렸다고 해도 이상할게 아니었다.


두 번째 추정 원인, 올바른 자세로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

이것도 PT랑 연관된 건데, PT를 하면서 힘든 거야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다. 다만, 놀라운 것은 내가 정면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데 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내 나름으로 수평과 수직을 맞춰서 정면을 본다고 봐 왔으나 미세하게 살짝 몸이 뒤틀려 있었다. 어깨와 골반이 수평을 이루지 않고, 바라보는 각도가 살짝 어깨가 골반 우측으로 돌아가 있었다.(이거 너무 자세한가...... 직접 보셨을 때 놀라실 정도는 아닙니다만....) 

그래서 하체 운동을 할 때마다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정면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 약간의 차이가 오른쪽 어깨에 뒤틀림을 유발했을지 모른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스치듯 떠오른다. "우리 아들은, 얼마나 놀고 싶으면 항상 츄리닝 바지가 돌아가 있어. 제대로 중심을 맞추지 않고 그냥 나가기 바빠서 대충 입고 뛰어다녔지" 뭐 그때부터는 아니겠지. 그건 그냥 고무줄 츄리닝 바지를 입은 거니까.. 초등학교 저학년 애가 뭘 그리 섬세하게 옷을 입었겠어...... 아니 그때부터 뒤틀렸다고 하면 너무 절망적이잖아...... 아무튼 본다고 본 정면이 정면이 아니었던 것은 단순히 물리적 교정뿐 아니라 나를 헤어 나오기 힘든 내면의 사유의 세계로 안내할 것만 같았다.


세 번째 추정 원인, 세월의 흐름.

말해 뭐해. 근데 말하고 싶지가 않다. 열심히 PT 받고 올바른 자세로 운동해서 최대한 지연시켜보련다.

물론, 알고 있다. 얘가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것을.


세 가지 다 그럴듯한 이유지만, 보다 심각한 문제는 아무리 스트레칭을 하고 운동을 해도 이게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잠을 잘못 잤나 싶었지만 3일째 그런 걸로 보아 잠의 문제는 아니고, 이건 필경 저 셋 중 하나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오늘 운동에서도 트레이너분이 마사지까지 해주고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지만 시원하게 조각이 맞아도 그때뿐, 어느새 다시금 오른쪽 어깨를 타고 팔이 아무 미세하게 저려온다. 심하지 않지만 신경이 쓰이는 통증 말이다.

우선 바른 자세로 운동하다가 정 안되면, 병원에 가봐야겠지.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상가 앞에서 폐지 줍는 할아버지 한 분이 박스들을 납작하게 눌러놓고 붙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만 보니 바람이 꽤나 심하게 불어서 박스들이 고정이 안됐고, 주변에 박스가 좀 흩날려 있었다. 내 주변에 떨어진 박스 하나를 주워서 할아버지께 가져다 드렸다. 어떤 부부가 나와 동시에 박스 하나를 들고 할아버지께 오면서 말을 붙인다. "아이고, 바람 부는데 너무 힘드시겠다."/"아이 씨, 힘드네" / "할아버지, 이거 제가 붙들고 있을 테니까 나머지 좀 주우세요"


내외가 그렇게 할아버지를 돕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단 하나의 박스만 할아버지 앞에 두고는 다시 귀가의 걸음을 계속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시장 골목을 지나 집으로 향하는 길. 오른쪽 견갑골과 같은 뒤틀림이 내 몸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내 마음을 잡는다.

내가 들었던 박스 하나. 나는 딱 그 정도의 마음의 부담만 가졌던 사람. 누군가는 바람 부는 곳에서 박스를 부여잡고 있을 수 있고, 누군가가 부여잡고 있는 박스를 어떤 이는 같이 더 줍는 이도 있다.

하지만 나는 딱 박스 하나 정도의 마음만 내어주는 사람.

오른팔에 잘 느껴지지도 않는 미세한 저림을 대하는 것처럼, 나는 마음의 저림도 무시하며 살았나 보다.


쓸데없이 글이 길어진다.

마음이 무거운데, 동시에 내가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피력하고 싶어 고민하는 손가락이 처연해지는 밤이다. 내일은 오른쪽 견갑골이, 내가 앞을 바라보는 자세가, 그리고 내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더 각자의 자리에서 나아졌으면 하는 무책임한 바람만 마음 한 구석에 담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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